* 본 촬영은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Q_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요?
가장 큰 변화는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으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겠네요. ‘공간’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을 이야기하는데 구독자분들이 좋은 피드백을 주고 계세요. 얼마 전 구독자 78만 명을 넘어서서 무척 기뻤습니다.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유튜브를 통해 하고 있습니다.
Q_
공간을 탐구하는 건축가는 어떤 매력이 있는 직업인지 궁금합니다.
건축가로서 가장 큰 매력은 미래를 내다보며 산다는 점입니다. 건축가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공간에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곳에 ‘이런 것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죠. 그 상상을 구현하기 위해 힘을 합하는 작업들이 참 매력적이에요.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단 것도요. 빨라도 1년, 길게는 4~5년, 더 오래는 10년까지 걸리는 건축도 있어요. 건축가는 그 지난한 시간 동안 미래를 상상하고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하죠. 모든 건축이 같지 않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건축주와 용도, 조건이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쓰임새를 가진 건축은 모두 다른 결과물을 냅니다. 이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모든 ‘일 공간’이
‘사무실이 아닌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우리가 일하는 공간은 앞으로 어느 한쪽으로 집중되기보다는
사무실, 공유 오피스, 집, 카페 등
다양한 형태로 분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Q_
저서 <공간의 미래>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변화를 언급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일하는 공간’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며 굉장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일하는 장소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토지가 고정돼 있고 직장 동료들은 옆집 이웃이었으며 협업이 생활화됐었죠. 모내기를 하거나 물길을 내야할 때 품앗이를 해야 했으니까요. 때문에 이웃, 즉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산업화 이후엔 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일단 옆자리 동료들은 다른 동네사람으로, 일이 끝나면 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평생직장은 더더욱 없어졌고요. 그런데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과거의 습성 때문에 직장 동료와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사회보다 더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때문에 회식도 자주 하죠. 우리는 직장 동료와 밥을 같이 먹고 가족 같은 느낌을 오랜 시간 유지해 온 민족입니다. 최근엔 젊은 세대로 갈수록 그런 성향은 점점 옅어지고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만큼 일하는 ‘이익 사회’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Q_
말씀처럼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최근 일하는 공간의 개념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업종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은 장소의 구애를 덜 받게 됩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집에서 일하고 결과물을 가지고 와도 되는 업종이 많죠. 하루에 두세 시간씩 출퇴근에 힘을 쏟지 않아도 되니 일의 능률도 올라갈 것입니다. 하지만 집의 환경이 열악한 사람은 집보다는 카페, 카페보다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기도 해요. 재택근무가 가능한 성격의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35% 정도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즉, 아직 65%의 일자리가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죠. 이 때문에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모든 ‘일 공간’이 ‘사무실이 아닌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어디서든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언젠가 AI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일하는 공간은 앞으로 어느 한쪽으로 집중되기보다는 사무실, 공유 오피스, 집, 카페 등 다양한 형태로 분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Q_
공유 오피스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공유 오피스야말로 일하는 공간의 개념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회사는 공유 오피스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확장되면 공유 오피스에 계속 머무르려는 사업주는 적을 것입니다. 쑥쑥 크는 성장기 어린아이의 옷을 함부로 살 수 없는 것과 같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각자의 방을 만들어주잖아요? 비슷한 이치입니다.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다가도 사업이 커지면 단독 사무실을 갖고 직원들의 공간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곳이 많아요. 중요한 것은 어떤 공간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는 곳인가 하는 고민입니다. 그 답은 사업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무척 다르겠죠.
Q_
일하기 좋은 공간은 어떤 곳일까요?
7~8년 전쯤 사무실에 고정 자리가 없고 매일 원하는 자리를 골라 일하는 ‘스마트 오피스’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절반 이상의 근로자가 사무실에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에 불만을 느꼈습니다. 선진적으로 스마트 오피스를 도입했던 독일도 최근에는 이를 폐지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안정감이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가 바로 안정감입니다. 하루의 반을 보내는 업무 환경에서도 안정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겠죠. 내 자리가 없다는 불안감은 업무 능률을 떨어지게 합니다.
업무 효율이 좋은 공간은 일하는 자리가 확실히 있으면서도, 창의적인 활동이 가능한 라운지나 휴게 공간이 적절히 섞인 곳입니다. 업무하는 자리는 양옆이 막혀 있고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독립적인 공간이 좋습니다. 독서실이 칸막이로 막혀 있고 간혹 집중력을 더 높이기 위해 작은 부스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저만 해도 책을 쓰는 공간은 대부분 비행기나 기차 안이거든요.
Q_
실제로 최근 고용노동부로부터 혁신 기업으로 인증받은 업체들 대부분이 직원들의 자리와 더불어 휴게 시설이나 라운지에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집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업무 공간에 둘 다 갖추는 쪽으로 흐름이 변화하고 있는 듯합니다.
맞습니다. 다양한 공간을 마련해 병행할 수 있게끔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이 좋습니다. 회사들이 이런 필요성을 느끼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임대료가 비싸고 공간이 좁아서 디자인적으로 꾸미는 것은 아직 많이 부족해요. 일하고 쉬는 공간이 잘 어울릴 수 있게 디자인한다면 더 좋은 업무 능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라운지까지 만들기 힘들다면 휴게 공간을 잘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Q_
휴게 공간은 어떻게 꾸미는 것이 효과적인가요?
일반적으로 휴게 공간 혹은 탕비실은 대부분 벽을 보고 있습니다. 보통 벽을 보며 커피를 타거나 복사기 옆에서 물을 마시죠. 가능하면 햇빛이 잘 드는 곳에 휴게 공간을 마련해보시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저희 건축사무소의 경우도 회사에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휴게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주광성 동물인 인간은 햇빛과 가까이 있을 때 편하게 쉴 수 있습니다. 주로 모니터를 보고 일하는 사무실에 햇빛이 많이 드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햇빛이 부족한 곳을 사무 공간으로, 햇빛이 잘 드는 곳을 휴게 공간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휴게 공간에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나 아일랜드 식탁이 있는 것도 좋습니다. 직원들이 대화하며 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죠. 한 사이드에 의자가 있다면 반대 사이드엔 스툴을 두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도 좋겠고요. 대신 의자의 높이는 맞춰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업무 효율이 좋은 공간은 일하는 자리가
확실히 있으면서도 라운지나 휴게 공간이
적절히 섞인 곳입니다. 조명에도 신경을 써보세요.
휴식할 때는 붉은 조명이
업무에 집중할 땐 푸른 조명이 도움이 됩니다.”
Q_
최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효율적이지만, 반대로 집에서는 일이 잘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집을 ‘일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때 좋은 팁 있을까요?
재택근무는 출퇴근 등에 분명 장점이 있지만, 잠을 자고 쉬는 공간이던 집에 ‘업무’라는 새로운 기능을 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럴 땐 먼저 청소부터 하는 게 좋아요. 생활의 요소가 최대한 눈에 안 보이도록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거나 수납해 두세요. 가능하다면 밥을 먹는 테이블과 업무하는 테이블을 분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힘들다면 큰 테이블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탁 트인 곳보다는 벽 혹은 고개를 돌리면 창문이 보이는 곳이 업무 효율에 더 좋습니다.
조명에도 신경을 써보세요. 우리는 푸른빛에는 긴장감을, 붉은빛에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동쪽에서 해가 뜰 때는 파장이 짧아져 푸른빛이 강하고 서쪽으로 해가 질 때는 반대로 붉은빛이 강해집니다. 때문에 인간은 푸른빛을 보면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붉은빛을 보면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쉴 때는 적당히 붉은기가 있는 조명을, 업무에 집중해야 할 땐 형광등이나 학습용 스탠드처럼 푸른빛이 도는 조명을 이용해보면 집에서 업무와 휴식을 병행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