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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세탁차를 몰고 마을 구석구석을 순회하는 류두희 씨.
몸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이 보다 쾌적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류두희 씨는 이들의 이불을 빨아주는 묵묵한 사회복지사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혼자 사는 노인들의 꿉꿉한 이불을 세탁해주는 것뿐이지만
‘마음을 깨끗하게 빨아줘서 고맙다’는 손편지를 받을 때 이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죠.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면서 고독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질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는 그로부터 인생 2막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글황정은 / 사진이도형
36년의 군 생활 마치고 사회복지사로
“저는 군인으로 36년간 활동했어요. 정확히는 ‘36년 8개월’ 동안 군에서 복무한 후 육군준위로 전역했죠. 오랜 시간동안 군인으로서 살아왔지만, 전역 후의 삶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특히 군인은 정년이 55세여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은퇴 고민을 해야 하죠. 전역 5년쯤 전부터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했어요. 수첩에 그림을 그리면서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즐거운 것 등을 슥슥 그려나갔죠.”
19세에 군에 입대한 후 30년이 흐른 시간. 그는 19세에 했던 고민들을 50세에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이미 갖고 있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떠올렸고 자연스럽게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거든요. 때문에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갖고 있었어요. 헌데 좀 더 다양한 분야로 길을 열어놓고 생각하자 싶어서 숲해설가, 직업상담사, 노인심리상담 등을 공부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경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이 때만 해도 숲해설가 쪽으로 마음이 점점 기울었어요. 아이들과 숲에서 중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류두희 씨는 계룡시청에서 사회복지협의회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 공고를 보면서 ‘숲해설가도 좋지만 사회복지사로 인생 2막을 이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곧장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동세탁업무 담당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어요. 2.5톤 이동세탁차를 운전해 봉사자들과 동네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장애인이나 독거 어르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의 이불 및 카펫 등을 세탁해주는 일이었죠. 이 일을 하면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36년의 군 생활을 하면서 나라에서 받은 만큼 나라에 뭔가를 보답하고 환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혼자 사는 노인들 만나며
자연스레 시작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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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회복지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 류두희 씨. 야심차게 시작한 이동세탁업무였지만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형 트럭을 운전하는 일도 어색했고 차량 내에 탑재된 세탁기를 돌리는 일도 쉽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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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퇴 후 삶을 준비하면서 2.5톤 탑차 트럭을 운전할 수 있는 대형운전면허를 미리 따 놓았다는 점이었어요. 그 외에는 모든 게 다 어려웠어요. 차량의 기능을 몰라 쩔쩔매기도 했고 차량 내 부착된 발전기, 펌프, 순간온수기, 세탁기 4대의 기능을 익히느라 애를 먹기도 했죠. 특히 겨울에는 모든 장치의 물이 얼기 때문에 잊지 않고 물을 완전히 빼야 하는데 장비가 고장 나면 무척 당황스럽더라고요. 수리나 예방 정비 경험이 없던 저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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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세탁은 주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진행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 위주로 매주 2~3회씩 마을을 방문하고 마을회관 앞으로 어르신들이 이불이나 카펫을 가져오면 세탁차에 탑재된 세탁기에 이불을 세탁한 후 각각의 가정에 널어주죠.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집집마다 방문해 직접 이불을 수거해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동세탁업무를 시작한지 올해로 벌써 7년차. 류두희 씨는 7년의 시간 동안 자신은 이불만 세탁해줬을 뿐인데, 어르신들께서 두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이야기할 때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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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노인 분들은 혼자 이불 빨래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가끔 자식들이 방문해도 이불까지 빨아주고 가진 않죠. 사실 쾌적한 이부자리가 삶의 질을 쾌적하게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인데 말이죠. 때문인지 저희가 방문하면 무료로 세탁해 주는 게 미안하다며 계란이나 고구마를 삶아 오시고, 어떤 분들은 직접 재배한 채소들을 주기도 하세요. ‘이불을 빨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손편지를 적어 건네시기도 하죠.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한편 그간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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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봉사업무를 하면서 류두희 씨는 할머니들이 한마디씩 던져주는 이야기와 사연들,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자신의 솔직한 마음들을 일기장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쌓아간 문장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면서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을 이어갔고, 어느 날 보니 자신이 쓴 문장들이 한 편의 글이 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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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어딘가에 공모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마침 2018년 한국문학세상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에 도전했는데 감사하게도 당선되어 등단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후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어요. 첫 번째 수필집 『길은 있으리』를 출간했고, 2년 후인 지난 해 11월 『그대 있어 내가 있지』 라는 두 번째 수필집을 출간했습니다.”
사회로부터 받은 만큼, 사회에 나눠주고파
혼자 글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계간지 및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투고하며 수필 작가로서의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쌓아 온 류두희 씨. 그가 고용노동부와 만난 계기도 공모를 통해서였습니다. 지난 2020년 말 노사발전재단에서 주최한 ‘신중년 인생 3막 우수사례 공모전’에 「군인에서 글쓰는 사회복지사로」 라는 글을 공모해 입선하게 된 것이죠.
“뭐든지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저를 이끌어 온 것 같아요. 글을 쓰게 된 것도 이러한 마음의 연장선이 이룬 결과죠. 하루하루 글을 조금씩 쓰다 보니 내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이면 작가로 등단해 책을 출간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노사발전재단에까지 글을 투고했고,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됐네요. 이런 걸 보면 삶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해요. 군인으로만 살아갈 때는 제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줄 알았을까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현재 조금이나마 뿌듯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류두희 씨는 인생 2막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던 데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계룡시 사회복지협의회 이정기 회장의 도움이 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처음 이 곳에 올 때만 해도 사회복지사로서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음에도, 자신을 믿고 선택해 주어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죠.
“계룡시 사회복지협의회에서 저를 선택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덕분에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열 수 있었어요. 과거의 저처럼, 은퇴 후 삶을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도전’하고 ‘준비’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미래를 계획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도 정년을 앞두고 ‘아직 젊은데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계획한 것 이상으로 좋은 일들이 많이 있었죠. 앞으로 이 사회가 점점 더 고령사회로 접어들 텐데 중장년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함으로써 사회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 이동세탁봉사를 더욱 열심히 하고 싶다는 류두희 씨는 미래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인형극을 배워서 노인시설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것이었죠. 물론 글도 꾸준히 써서 2년에 한 번씩 수필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소외된 이웃들 사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는 류두희 씨. 세상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만들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는
류두희님을 응원합니다!”
이정기 회장 계룡시 사회복지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