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한 한식에 깨소금을, 방금 완성된 양식에 파슬리 가루를 뿌리면 요리가 더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그 위에 또 하나의 시즈닝(양념)을 뿌려 풍미를 더한다.
바로 그 요리와 식당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다.
글. 강진우
얼마 전 세계적 인기를 얻으며 종영된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시청자 대다수가 눈시울을 붉힌 장면이 있다. 미국 교포 에드워드 리 셰프가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정체성의 혼돈과 문화의 혼재를 ‘비빌 수 없는 비빔밥’이라는 메뉴로 표현해 극찬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덕분일까.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2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고유의 역사와 스토리가 담겨 있는 제품과 서비스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중국 스마트폰의 고품질화와 저가 공세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이 2023년 스마트폰 판매 점유율 1~7위를 모두 석권한 배경에는 애플 사(社)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라는 아이콘과, 그가 일군 스토리의 몫이 상당하다. 이러한 경향성은 외식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앞서 소개한 에드워드 리 셰프도 그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요리와 식당에 이야기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데, 세상은 이러한 트렌드를 ‘스토리 다이닝’이라고 부른다.
제주도에는 대표 상징인 해녀와 제주 특유의 신선한 해산물을 하나로 엮은 공연형 식당이 있다. ‘국내 최초 해녀 다이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식당은 이름 그대로 해녀가 갓 잡아 올린 제주 해산물로 식단을 차린다. 아울러 해녀가 직접 출연하고 먹거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는 공연과 토크쇼를 통해 현역 해녀들이 경험한 수십 년 희로애락을 몇 시간으로 응축하여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도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스토리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1인당 5만 원이 넘는 비싼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MZ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차별화된 콘셉트를 잡고 식당을 개업한 사례도 종종 눈에 띈다. 서울 중구 황학동에 위치한 한 에스프레소 카페는 언제 어디서든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옛 유럽 우체국의 감성을 들였다. 색 바랜 벽지, 손때 묻은 소품 등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지만, 이곳의 백미는 주문 방식이다. 주문지에 메뉴명을 적어 건네면 번호가 적힌 열쇠를 주는데, 메뉴가 나오면 손님이 열쇠로 서랍을 열어 직접 메뉴를 가져가야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스토리를 통해 마치 추억 가득 담긴 편지를 우체통에서 꺼냈을 때의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편지지와 우표를 구매해 편지를 쓰고 편지함에 넣으면 실제로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부쳐주기도 한다.
요리와 식당의 첫 번째 덕목은 단연 ‘맛’이다. 하지만 거의 같은 맛을 구현하는 두 식당 중 한 곳에만 스토리가 담겨 있다면, 사람들의 발길은 이야기가 있는 쪽으로 향할 것이다. 최고의 기술력에 오랜 역사와 다양한 이야깃거리까지 두루 갖춘 아이폰이 여전히 판매량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뮤지컬에서 영감받은 요리를 스토리텔러의 설명과 함께 제공하는 레스토랑. 인테리어, 소품 등도 공연 특징을 반영해 뮤지컬 안에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김밥을 테마로 내세운 경북 김천시의 지역 축제로, 지역명이 김밥 프랜차이즈 이름과 유사한 점을 재치 있게 활용해 방문객 10만 명이 몰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제주도와 제주농협이 MZ세대를 겨냥해 ‘팝업스토어 성지’ 성수동에서 지역 특산물인 감귤을 홍보하고 시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