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전 판정 이후 찾아온 좌절, 새로운 직업 가지며 이겨냈어요”
KT희망지음 이성수 씨
장애인 취업은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어렵습니다. 때문에 정부는 다양한 장애인 고용촉진 제도를 마련해 장애인이 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운영하는 ‘장애인 인턴제’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KT희망지음의 이성수 씨를 만나 그의 취업 성공기를 들어봤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미국생활 접고 4년 전 귀국
20살이 되던 1993년, 성수 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커뮤니티컬리지에 입학해 편입학을 위한 학점을 취득하고 4년 뒤 명문 워싱턴주립대에 편입학했습니다. 당시는 멀티미디어와 디지털의 시대가 열리는 시기였고, 성수 씨는 시대적 흐름과 자신의 적성에 맞는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했습니다. 그렇게 8년간 학업을 마친 뒤에는 누구나 ‘성공’이라고 부를 만큼 고임금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공과는 다르게 공중전화카드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어요. 마그네틱을 긁으면 핀 번호가 나와 전화를 걸 수 있는 카드인데,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드 제조 시장이 엄청 컸습니다. 또 미국에서 카드를 만드는 한국기업이 많았죠. 처음엔 세일즈맨으로 들어갔다가 임원이 되기도 하면서, 약 15년간 카드를 제작하는 회사에 몸을 담았어요.”
뿐만 아닙니다. 성수 씨는 식당 운영을 추천하는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여 미국 북서부에 테리야끼 식당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운영과 요리를 도맡는 만능 자영업자였죠. 그렇게 다시금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며 새로운 삶을 살던 성수 씨는, 2019년 몸이 안 좋아 찾은 병원에서 신장병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청천병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장애인인턴제’ 통해 KT희망지음에 취업
27년간의 미국생활은 절반은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강을 잃었으니 인생무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수 씨는 미국의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신장병 진단을 받은 이듬해 부모님이 계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약 3년간 실의에 빠져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다 비로소 지난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 인턴제’를 통해 다시 세상에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재택근무였는지 편의점 근무였는지, 어쨌든 장애인 고용 공고를 보고 공단에 연락했어요. 당시 지원했던 일은 불발이 됐는데, 이후 공단에서 새로운 일자리 정보를 계속 알려주시더라고요. 신장병은 주기적으로 투석을 해야하기 때문에 직장생활이 쉽지 않았거든요. 여러 일자리를 소개받은 끝에 유리창 닦는 일이 저에게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해보니 일이 재미있어요. 가끔 ‘유리창이 깨끗하다’고 말씀해주는 고객들을 만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성수의 직장은 KT희망지음입니다. 이곳은 사회적 취약계층인 장애인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KT가 설립한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입니다. 장애인을 고용해 인쇄, 차량 세차, 매장 유리창 클리닝 업무를 맡기고 있는데요. 성수 씨는 3개월간의 인턴기간을 마치고 정직원이 되어 하루 8시간씩 매장 2곳을 돌며 유리창 닦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장이식 이후 나눔의 삶 이어가는 게 꿈
새벽부터 장을 보고 가게 문을 열고 수명의 종업원과 음식을 팔고 저녁 늦게 문을 닫았던 식당 일에 비하면 지금의 일은 훨씬 단순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나니 남들에게 작아 보일 수도 있는 이 일이, 성수 씨는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성수 씨는 다시 시작된 직장생활을 위해 주 3회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혈액투석 대신 하루 4회 집에서 직접 행할 수 있는 복막투석으로 치료방법도 바꿨습니다.
“가끔 병원에 가면 저처럼 투석하는 환자들을 만납니다. 대부분 장애인의 몸으로 취업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취업 지원 제도를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공단 쪽에서 병원 투석실 같은 곳을 통해, 취업지원 제도를 알리고 홍보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했어요. 많은 장애인이 좌절하지 말고 저처럼 취업에 성공해 활기찬 삶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성수 씨는 제3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수 씨는 신장이식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게 될 7년 후쯤에는 본격적으로 나눔활동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사실 성수 씨는 수년 전부터 한 선교사와 컴패션을 통해 탄자니아 아이들을 후원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병원비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을 후원에 사용하고 있죠. 건강을 회복해서 더 좋아하는 나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성수 씨를 다시 만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