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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사범이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소년이 어느덧
예순 나이가 되어 인생2막을 열었습니다.
젊은 날 거침없이 호령하던 태권도 사범을 거쳐,
오랜 세월 진득하니 한자리에 앉아
작은 보석을 세공해온 그는
이제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선 추성근 씨의 꿈은
이제 ‘행복’입니다.
글윤진아 / 사진이도영
The Boy’s Dream
이른 아침, 건물 순찰에 앞서 경건한 마음으로 근무복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추성근 씨의 꽉 찬 하루가 시작됩니다. 수십 년 전 태권도 도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던 그의 손은 온통 굳은살투성이입니다. 지난 6월 첫 출근을 시작한 추성근 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 시설 보안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9시에 교대하는데, 격일제 근무지만 수면 사이클이 바뀌다 보니 처음엔 몸이 적응을 못 했어요. 쉬는 날엔 거의 잠만 잤죠. 그런데 몇 주 지나니 금세 익숙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이 생활이 훨씬 나은 것 같더라고요. 쉬는 날엔 집 뒷산 둘레길을 두세 시간 걸으며 체력을 길러요. 어려서부터 산을 참 좋아했거든요. 체력이 받쳐줘야 일도 잘 해내죠(웃음).”
충남 서천 작은 시골마을의 목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종종 나무로 장난감을 깎아주셨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절 건축현장에 가본 적도 있는데, 아버지의 넓은 어깨너머로 본 세상이 어찌나 근사했던지, 어린 마음에 ‘나중에 커서 나도 아버지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수련한 추성근 씨는 청년 시절 태권도 사범이 되어 체육관을 운영했습니다. 결혼해서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뒤에는 귀금속 세공 일을 했습니다. 기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3~4년은 걸려야 했지만, 하루 세 시간만 자며 독하게 연습해 1년 만에 마스터했답니다. 당시 귀금속 세공 분야에선 선진국이었던 일본으로 가서 5년간 일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어엿한 내 사무실도 차렸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손재주 덕에 자식 번듯하게 키워내고 보람도 컸지만,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제일 작은 보석이 0.5mm예요. 머리 위로는 형광등 대여섯 개를 켜놓고 작업하죠. 밝은 빛 아래서 세밀한 작업을 반복하니 눈이 많이 나빠져 더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하겠더라고요.”
20년 넘게 해왔던 귀금속 세공 일을 접고 당구장을 차렸지만, 골목상권이 죽고 코로나 19까지 겹쳐 결국 폐업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좀 쉬고 싶었어요. 30년 넘게 쉬지 않고 일했으니 몸도 마음도 지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딱 한 달 쉬고 나니 어서 다시 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여기저기 이력서도 올리고 열심히 구직활동에 나섰지만 연락이 오는 곳이 없었어요. 서울에 건물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일할 자리 하나 없을까 싶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였어요.”
물고기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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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노사발전재단 서부센터에서 교육 안내 문자를 받았습니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찾아갔던 그곳에서 인생의 멘토, 유정선 컨설턴트를 만났답니다. 추성근 씨는 올해 4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생애경력설계 프로그램과 재도약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교육을 수료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는 추성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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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교육받으면 바로 취업 알선해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더라고요. 많은 강사님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특히 유정선 컨설턴트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 제 마음가짐이 확 바뀌었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 유용한 팁 한 가지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애쓰시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 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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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온종일 얼굴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니더라도 늘 그 자리에 서서 불을 밝혀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그라지던 꿈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지친 몸과 마음을 북돋워주는 사람. 내 안에 잠재된 에너지를 끌어내주는 멘토. 노사발전재단 서부센터 유정선 선임컨설턴트는 추성근 씨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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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선 컨설턴트님의 말씀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게 ‘포기만 안 한다면 언젠가는 길이 열린다’는 말이었어요. 사실 저도 교육받기 전 그렇게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3개월 동안 딱 한 번의 면접 기회만 있었어요. 그마저 잘 안 됐고요. 그러면 사람이 솔직히 포기하고 싶어지거든요. 나는 안 되는가 보다 자신감이 끝없이 떨어지다가 교육을 받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죠. 컨설턴트님이 알려주신 대로 취업 담당자에게 문자도 남겨보고 전화도 해보며 적극적으로 저를 어필했더니 ‘그럼 면접 한번 보러 오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이 직장이 바로 그중 하나였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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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랫말처럼 돌이켜 보면 인생은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펼쳐져 왔는지 모릅니다. 그 거짓말 같은 기적을 몸소 체험한 추성근 씨가 다른 이들에게도 마법의 주문을 나눠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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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저처럼 삶의 새 기로에서 재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교육 프로그램처럼 유용한 길잡이를 능동적으로 찾아보고, 잘 활용하란 겁니다. 손 놓고 기다리다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으면 됩니다.”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재취업에 성공한 추성근 씨의 하루는 바쁘게 굴러갑니다. 건물 안팎을 순찰하고, 지하 전기실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쓰레기 하치장 정리도 하고, CCTV도 쉬지 않고 모니터하는데요. 태권도에서 상대를 가격한 뒤 다시 기본자세를 취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처럼 한 가지 일을 마무리 지은 뒤에도 계속해서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며 신중하게 다음 상황을 준비합니다. 세공 일로 잔뼈가 굵은 ‘매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 순찰과 모니터에도 최적이라는 말에 미소가 고입니다.
“오후 7시쯤 되면 사무직 직원들이 전부 퇴근해요. 오피스텔 거주자가 130여 명 되는데, 그분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이 크죠. 주인의식을 갖고 일의 재미를 만들어가면서 근무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수십 년 전 아침에 그랬듯 늘 새로운 태양이 등장했습니다. 새것이 옛것을 대신하고 그 새것이 다시 옛것으로 숙성하면서 세상은 돌고 도는 법입니다. 그러나 늙지 않는 강과 산 위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새 아침이 있고, 성실한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또 다른 하루를 힘차게 여는 2021년의 서울. 꿈 많던 태권소년도 어느덧 예순 살의 경비가 되어 바지런히 인생 2막을 열고 있습니다.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꿈은 더 많이 생겼답니다. 여전히 좋은 아버지가 되는 꿈, 다정한 남편이 되는 꿈, 더 겸손한 자세로 원칙을 지키며 사는 꿈…. 앞만 보고 달려갈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꿈들을 소중하게 보듬으며, 앞으로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질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