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DECEMBER/ vol.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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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내 한가운데에는 검찰과 대구고등법원 등이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든든하게 세워진 법원의 외관은 누군가의 손길로 세심하게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손길은 바로 박승욱 씨였습니다. 박승욱 씨는 57세의 나이에 이곳 대구고등법원에 청소분야 공무직으로 새롭게 취직했습니다. 매일 아침 대구고등법원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는 새롭게 시작된 자신의 일상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황정은 / 사진박찬혁

코로나19가 가져간 일자리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사람들의 건강만 앗아간 게 아니었습니다.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로 인해 안전한 삶의 기반도 빼앗겼죠. 박승욱 씨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식자재마트에서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일을 했지만 코로나19로 영업 제한 조치가 이어지면서 식당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자 그 여파가 자연스럽게 박승욱 씨가 일하는 곳에까지 이어진 것이죠.

“그곳에서 약 4년 정도 일했어요. 주 고객이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보니 코로나19로 식당이 영향을 받으면서 제가 일하던 마트도 힘들어졌어요. 매출이 타격을 받으면서 2020 년 10월에 일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순으로 일을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자진해서 회사를 나왔죠. 그곳에 더 있어봤자 마음이 편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일자리를 잃고 나니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에 매일을 술로 보 냈던 것 같아요.”

일자리를 잃은 후, 박승욱 씨는 뭐라도 해보자 싶어 동종업계 취직부터 창업까지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일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기업은 매출감소가 이어져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채용을 하는 곳을 만나도 나이 때문에 거절되는 일이 다반사였죠.

“계속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 보니 공사현장 막노동 일까지 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 일도 얼마 못했죠. 체력적으로 힘든 걸 떠나서 제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다른 업계도 문을 두드려봤지만 결국 나이에서 제한이 걸렸어요. 그러다 창업까지 생각하게 됐죠. 입주청소를 하면 어떨까 싶었거든요. 평소에 깔끔한 걸 좋아해서 청소하는 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창업 전에 일을 좀 배워보자 싶어서 아파트 입주청소 공고가 나면 지원해봤는데, 이 역시 나이 때문에 안 되더라고요. 아 침 일찍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있겠냐면서요. 쓴웃음만 나왔죠. 저는 식자재마트에서 일하며 매일 새벽 5시에 일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인데 말이죠. 그 후로도 마스크 공장, 택배 기사, 공사현장 등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곳을 노크했지만 한 군데에서도 환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방법도 안 되는구나 싶어 마지막 희망으로 고용센터를 찾아갔습니다.”

  •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고용센터에서 만난 은인 “일자리를 잃고 3개월을 집에 있다 보니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3개월이 3년처럼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일하지 않는 남편, 일자리 없는 아빠로 존재하는 게 용납이 안 됐죠. 마음이 복잡 하다 보니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도 빨래며 설거지며,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일하고 집에 온 아내는 그런 저를 보면서 더 힘들어하고 악순환이었죠. 밖에 나가기 싫으니 술만 마시게 되고요. 사람이 한 번 의지를 잃으니 점점 나태해지면서 생각을 더 못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뭐라도 해보자 싶어 고용센터를 찾아갔습니다. 한 번 방문이나 해보자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고용센터를 찾은 박승욱 씨는 방문 첫날 받은 면담에서 형식적인 조언 이상의 실질적인 질문과 도움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고 말합니다.

  • “제가 가자마자 1:1로 면담을 시작하더라고요. ‘이것 봐라? 예전 의 고용센터가 아닌데?’ 싶었어요. 꽤 신뢰가 가더라고요. 어떻게 고용노동부에 오게 됐는지, 어떻게 일자리를 잃었는지,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 등 매우 구체적인 질문을 하셨어요. 김명화 컨설턴트가 저를 담당해 주셨는데, 지금도 제가 가장 감 사하게 생각하는 분이에요. 그분이 제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저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그 동안 나이 때문에 재취업이 막혔던 이야기, 일자리를 잃고 막막했던 이야기 등 다 털어놓았어요. 컨설턴트 분께서 제 이야기를 다 들어보시더니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입주청소가 하고 싶다고 했어요. 제 말을 들으시더니 ‘고등법원에 일자리가 하나 나왔는데 서류 넣어보지 않으실래요?’ 하시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 평소에도 청소를 좋아하는데 그 일로 취직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서류를 내기도 전에 한 가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딱 2명만 뽑는 공고였기 때문이죠. 2명을 뽑지만 공고를 조회한 횟수는 수 천회. 이 경쟁률을 뚫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박승욱 씨는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정규직으로 시작한 인생 2막, 안정적 일자리가 주는 행복 모든 것이 막막했지만 그 여정에는 김명화 컨설턴트가 함께 했습니다. 서류 작성 방법을 배우고, 작성한 서류를 검토해주 는 등 박승욱 씨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함께해 주었습니다.

“서류에 쓸 게 많더라고요. 내가 살아온 길, 어떻게 일할 것인 지 등등 진지하게 생각하고 적어야 할 것들이 가득했어요. 고 민해서 쭉 적어 내려갔죠. 하지만 이대로 서류를 접수하기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때 컨설턴트 분이 제가 쓴 서류를 검토해주셨어요. 덕분에 안심하는 마음으로 서류를 내고 1차에 합격했어요. 면접이 잡혔죠. 그런데 제가 면접을 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센터에서는 면접교육까지 연결해 주셨어요. 연결해주신 센터에서 아주 상세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덕분 에 실전에서도 떨리지 않더라고요.”

결국 박승욱 씨는 고등법원 청소분야 공무직에 당당히 합격 했습니다. 게다가 정규직으로의 취직이었습니다. 합격자 발 표날, 너무 떨려 직접 확인하지도 못하고 막내딸을 통해 확인 했다는 박승욱 씨는 합격 소식을 들은 후 왈칵 눈물이 쏟아 졌다고 했습니다. 3개월 동안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이제 됐다,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아침 6시 반에 출근해 법원 외관을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후에는 조경 업무를 해요. 제 손으로 깨끗하게 정돈한 법원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속에 고요하게 청소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마음이 다 평온해지는 것 같아요. 새로운 직장 생활에 너무나 만족합니다. 진작 이곳에 왔다면 더 좋았을걸, 싶을 정도예요. 퇴근이 이르기 때문에 가족들과 매일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더 감사해요. 지금은 제가 퇴근길에 저녁거리를 장 봐서 들어갑니다. 설거지도, 청 소도, 빨래도, 장보기도 다 제가 해요(웃음). 저녁과 주말에 여유가 생기면서 제 인생 57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주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갔죠. 덕분에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좋아해요.”

이력서를 만들면서 정순안 씨는 지나온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한 회사에서 쌓아온 일을 통해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깊이 들여다보았다고 이야기했죠.

“이력서를 쓴지 얼마 안됐을 때, 과거 고객으로 함께 일했던 지인이 함께 일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회사의 비전과 포부를 새롭게 다지는 상황인데 제가 그 여정을 함께 하면 좋겠다면서요. 그 제안에는 관리자가 아닌 실무자로 다시 일해 줄 것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안을 받은 정순안 는 큰 고민 없이 수락했습니다. 일부 주변에서는 임원이 아닌 현역으로 재취업 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정순안 씨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서 상담을 받으며 저에 대해 확고히 알게 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큰 고민이 없었어요. 상담을 하면서 ‘그래, 난 아직 일해야 할 때다’ 라는 생각이 굳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때문에 다시 현역으로 입사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자부심이 있었죠. 실무자로 초대 받았다는 것은 제 실력이 인정받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거죠. 많은 임원들은 실무를 할 줄 모르지만 저는 달라요. 임원으로서의 일도, 실무자로서의 일도 모두 해낼 수 있죠.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여전히 필드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이요.”

현재 정순안 씨는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업무를 30년 이상 하고 나니, 모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이 쉽고 덕분에 스트레스도 없다면서 말이죠. 물론 지금의 만족감은 지난 30년간의 숱한 어려움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지금 회사에서 제 몫을 충분히 하고 싶어요. 대표님의 포부와 의지가 제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아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인 것 같아요.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주니까요. 저도 이곳에서 함께 ‘뭔가를 하고’ 싶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그 이후에 또 만들어지겠죠. 지금은 현재에만 충실하고 싶어요.”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그는, 은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은퇴 준비를 미리 하느라 현재의 일에 소홀히 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죠. “충실하게 보낸 현재의 시간들이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시켜줄 거예요. 그러니 자신을 믿고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에 집중하세요.” 수많은 현재의 시간이 모여 미래를 만든다는 진리를 되뇌이며 정순안 씨는 오늘도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계속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요.

앞으로 정년까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몸을 더 든든하게 단련할 것이라는 박승욱 씨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정년을 채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코로나19의 여파로 은퇴 하게 된 많은 사람에게 ‘좌절하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였습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시기도 한순간이니,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지는 말자는 의미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저도 참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국 지나가더라고요. 무조건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니 너무 무너 지지 마세요. 마음을 잘 다잡으시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채워주세요. 그리고 혼자서 고민하지 마시고 반드시 고용노동부를 찾아가세요. 그곳에서 여러분의 제2의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현재에 실망하지 말고 앞날을 향해 나아가 세요.”

한 번도 정규직 직원으로 일해본 적이 없다는 박승욱 씨는 요즘처럼 마음에 안정을 찾은 날이 언제였던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있었기에 근심과 눈물을 거두고 행복 과 미소를 찾을 수 있었다는 박승욱 씨는 매일 아침 6시 반, 청소로 여는 새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