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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자유
<그리스인 조르바>

길 위에서 만난 자유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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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1964년 미카엘 카코야니스 감독이 영화로 만든 <그리스인 조르바>. 영화는 한 남자의 성장담인 동시에 로드무비다. 큼지막한 여행 가방에 우산을 쓴 신사가 부둣가 대합실로 들어오고, 창밖에서 뭔가를 살피던 사내와 눈이 마주친다. 영국에서 태어난 사업가와 안 해본 일 없고 안 가본 곳 없는 중년 남자가 즉석에서 흥정을 벌여 함께 크레타 섬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이 남자는 영국신사가 개발하려는 탄광의 책임자가 될 것이었다. 두목으로 불리게 될 30대 중반의 사업가와 60대 중반의 조르바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고용계약서는 없다. 럼주 한 잔이면 충분하니까. 이후부터 영혼이 자유로운 남자 조르바와 책상물림 두목의 행보는 단순하지만 흥미롭다.
개봉 1964
장르 모험, 드라마
감독 마니엘 카코야니스
주역 안소니 퀸(알레시스 조르바 역) 앨런 베이츠 (버질 역)
조르바는 자기 분신과도 같은 산투리를 항상 곁에 두고, 먹고 마시고 춤춘다. 반면 두목은 매사에 조심스럽다. 과부 소멜리나를 관심있어 하면서도 섣불리 접근하지 못한다. 영화는 능숙한 노동자와 로맨티스트 한량을 오가는 모습, 즉 두 가지 모두 척척 해내는 조르바의 일상에 집중한다. 에너지 넘치는 행동주의자 조르바가 삶을 찬미하고 세상에 도전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춤이다. 조르바에게 춤은 세 살배기 아들을 잃은 고통을 잊기 위한 지푸라기였다. 반면 책 속에서 배움을 구하던 이상주의자 두목은 소멜리나를 욕망할 때 비로소 조르바의 춤을 흉내 낸다.

두목은 말한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라고. 즉 책벌레인 두목이 고독의 의자에 앉아 풀어보려 했던 문제들을 산속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칼 한 자루로 풀어버린 인물이 조르바였다. 두려움과 충동으로부터의 해방되어 자유로운 조르바를 만난 두목은 함께 내면 여행을 하며 알을 깨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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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을 배운 샌님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세상 이치를 터득한 사내가 우정을 나누며 삶을 교류하지만, 탄광개발은 성공하지 못한다. 돈과 시간을 투입한 야심찬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 두목은 비로소 조르바에게 같이 춤추기를 부탁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나누는 진정한 교감이란 이런 것일 터.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막 이해하기 시작한 인생 초보자가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카메라는 점차 뒤로 빠져 하늘로 시점을 올리면서 버드아이 쇼트(새의 눈높이에서 찍었다는 의미)가 된다. 자신을 가둔 틀에서 벗어나 삶의 무게와 상념을 날려버린 자유인의 모습. 조르바는 작가 카잔차키스의 분신이었다. 크레타 섬에 누운 카잔차키스 무덤의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영국 신사인 두목과 호방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만나 엮어가는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는 빗줄기 퍼붓는 피레우스 항구에서 시작해 맑은 하늘 펼쳐진 크레타 바닷가에서 끝난다. 자유로운 사람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카잔차키스식 대답이다.
(추신) 글로벌 SPA브랜드 ZARA의 첫 번째 매장 이름은 Zorba였다. 근처에 같은 이름의 바가 존재하는 바람에 자라로 개명한다.

“분명히 해둡시다. 내가 일 할 때는 고용인이지만, 쉬고 노래할 때는 ‘자유’인 겁니다.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인간다운 삶은 곧 ‘자유’이다

언제부터인가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말이 공식처럼 되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고 자기 포지션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일과 가정 모두에서 성공한다는 뜻일 터다. 주요 선진 국가는 어떤 고용·근로의 자유를 가지고 있을까. 독일은 2008년 8월부터 근로자가 업무 강도나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 시간을 조율할 수 있는 ‘근로시간 계좌제도’를 도입했다. 업무량이 많을 때는 초과근무를 통해 초과시간을 저축해 두고, 업무량이 적은 시기에는 저축해둔 초과시간을 사용해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 미국은 기업에 해고와 고용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이다. 사용자는 사전 통보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고, 근로자 또한 원하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
조르바는 일할 때는 쉬지 않고 매진하되 놀 때는 미친 듯ㄴ이 논다. 요즘으로 치면 워라밸이 확실한 캐릭터다. 일자리를 부탁하면서도 자신의 자유만큼은 지켜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왜? 자유를 상실한 사람은 인간이 아니니까. 타인을 의식하거나 눈치 보거나 체면 차리지 않고 시선으로부터 초월하는 자유, 사회 통념과 기대와 소망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삶이 자유로운 삶이다. 자유는 조르바 삶의 핵심이자 영원한 화두였다. 내 삶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한 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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