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무림지존, 취업준비생이 되다
4화. 취업도 무술처럼 기본기 수련이 중요한 법!

등장인물

주인공 무명선사

: 구파일방의 태두, 소림사의 방장이자 무림의 지존. 무림의 앞날을 결정짓는 마교와의 대격전 중 적의 사술에 당해 우연찮게 차원을 이동하여 현실 세계 오게 된 무림의 지존. 현실 세계에 도착한 첫날, 오덕오와 만나게 되어 그의 도움으로 현실 세계에 적응해 나간다.
무림으로 회기하길 희망하지만, 당장 마땅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오덕오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취업에 도전한다.

주인공 오덕오

: 평범한 30대 초반의 취업준비생. 우연찮게 만나 무명대사가 무공이 깊은 무림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무명을 이용해 자신의 막힌 기혈을 뚫을 계획으로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당장 갈 곳이 없는 무명을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시키고 자신은 그의 매니저가 되길 희망하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오덕오의 짝사랑녀 민지아

: 오덕오의 여자 사람 친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덕오를 알고 지냈고, 자신을 향한 덕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만, 겉으로는 쌀쌀맞게 대하며 모른 척하고 있다.
취업 문제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찾아온 무명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오덕오의 죽마고우 국영수

: 덕오의 표현대로라면, 남중, 남고, 공대생으로 진학한 비운의 캐릭터. 대신 그만큼 좋아했던 과목에 집중했었고, 현재는 원하던 직업을 가진 상태다.
말로는 매일 프로그램 개발자라는 자신의 직업을 한탄해 왔지만, 실상은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자부심도 크다.
덕오가 데려온 무명을 보고, 덕오가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덕오와 무명이 절친한 사이일 것이라 생각하고 무명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4화. 취업도 무술처럼 기본기 수련이 중요한 법!

글. 문수림

순식간이었다.
세상에 덕오의 심장 뛰는 소리만이 남았고, 덕오의 눈에는 지아의 얼굴, 아니, 아리송한 눈빛만이 담겼다.

‘저 눈빛은… 혹시 내게 호감을 나타내는 걸까?’



덕오의 망상이 무명의 무영각(無影脚, 너무 빨라서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발차기 기술)보다도 빠르게 치닫는다. 지아의 아리송한 눈빛 한 번에, 고백하는 상상을 하나 싶더니 어느새 결혼식 올리고 아들, 딸 낳고, 그들이 또 장성하여 손자까지 보는 상상까지 논스톱으로 내달리는데, 수십 초도 걸리지 않는다.

‘네 친구라서 같이 온거야?’



사실 지아의 눈빛이 말한 건 이처럼 간단한 물음이었다. 한동안 기별도 없이 잠잠하던 덕오가 애써 굳이 자신의 일터로 사람을 데려와서는 옆에서 사사건건 흰소리만 하는 게 터무니없이 못나 보였던 거다.
덕오는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서 심장에게 뜀박질을 시키는 거로 모자라 그리 좋지 않은 머리를 최대한 굴려 지아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진심으로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당연히 답은 구하지 못한 채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또 눈치만 봤다.

“그럼, 이제 소승은 어찌하면 되는 겁니까? ‘웹 기획자’나 ‘시스템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게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관련된 업무를 보는 곳으로 찾아가서 저를 써달라고 하면 될까요?”



“아무리 그래도 형, 무슨 취업을 자장면 배달시켜먹듯이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는 건 좀 아니잖아. 다 절차가 있는 거지. 왜, 무술도 뭐든 익힐 때 기본기부터 익히잖아. 태권도만 하더라도 시작은 기마자세에서 정권지르기부터야. 소림사 무술도 그렇지 않아? 하체 단련이랑 정권 단련부터 하는 거 아냐?”



“좋은 지적이오. 뭐든 기본기부터 제대로 익혀야죠. 그럼, 어디서 기본기를 익히면 되겠소?”



덕오와 무명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지아는 싱긋 웃어 보이더니 상냥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취업의 기회가 열려있고, 여긴 그걸 돕는 곳이니까요. 기본기 익힐 시간도 챙겨드리고, 방법도 알려드려야죠. 일단 그전에 신분증부터 보여주시겠어요?”



신분증이란 말에 무명의 얼굴이 굳었고, 덕오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예 실력은 확실한 무명이지만, 운전면허증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뭔가 더 수상쩍어진 것도 사실이다.

“사실 소승이 몸을 담고 있던 곳에서는 신분증을 꺼내들 일이 없었소. 부끄럽지만, 소승이 워낙 독보적인 존재라 알아서들 나를 챙겨줘서 말이오. 그런데 이곳에 오게 되니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아졌구려. 있어보시오. 호패(號牌)를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쓰지는 않더라도 늘 품에 넣고 다니기는 하였소.”



덕오는 호패라는 말에 또 한 차례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무명의 손끝을 응시하는 지아를 보고서는 급히 입을 가렸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무명은 품 안에서 호패를 찾아 뒤적였지만, 늘 품에 넣고 다녔던 딱딱하고 작은 나무막대기가 집히지 않았다. 대신 생전 본 적이 없는 훨씬 가볍고 네모반듯한, 요상한 물건이 있었다. 게다가 거기엔 무명의 얼굴 그림까지 그려져 있지 않은가?

“이건 내 얼굴이지 않은가?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군.”



덕오는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허리까지 젖혀가며 꺼이꺼이 흐느끼는 소리마저 내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와! 진짜 형 컨셉 제대로구나! 뭐? 주민등록증을 몰라? 아니, 있어 봐봐. 주민번호 앞자리 좀 보자! 진짜 몇 살이니?”

그 와중에도 눈치가 빠른 무명은 냉큼 주민등록증을 뒤로 뒤집어서 지아에게 쑥 내밀어 보였다.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이는 몰라도 일단 덕오에게는 신분증이란 것의 내용을 보여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지아는 상냥하게 웃어 보이며 무명의 신분증을 받았다.

“네, 우선 신분 확인되셨고요. 소득‧재산 증빙이 어려우시다고 하셨는데, 취업 경험이 없는 18세~34세에 속하는 청년 구직자이시니 <국민취업지원제도 II유형>지원 받으실 수 있어요. II유형은 취업활동비용 및 취업지원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여기서 잠깐!
올해부터는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해 빠른 취업에 성공한 경우, 조기취업성공수당을 지급해드립니다.

2022년 2023년
요건 취업활동계획 수립 후 2개월 이내 취업시 취업활동계획 수립 후 3개월 이내 취업시
혜택 I유형 50만원 1회 지급 I유형 구직촉진수당 잔여금액의 50%
II유형 50만원 1회 지급 (조건부수급자)
국번없이 1350 또는 국민비서 상담챗봇(국민취업지원제도)에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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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취업지원제도와 관련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6월호 ‘고용 아카이브’ 코너를 참고해 주세요.
지아는 자신의 책상에서 다시 소책자 하나를 가져와 무명에게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덕오가 무심결에 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무협지 한 권을 뚝딱 해치웠을 만큼 달아나있었다.

‘난 뭐하고 있는 거야? 사실 저 자리에 앉아서 상담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가? 아니지, 아니야. 소림사에서 주먹질만 익힌 양반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어떻게 익히고, 코딩을 어떻게 짤 수 있겠어? 결국 제풀에 먼저 쓰러질 거야. 아직 기회는 있어. 내가 저 양반 기필코 UFC 링에 올리고 만다!’



덕오의 그런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무명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세계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지아는 컴퓨터라는 걸 능숙하게 다루어서 무명이 궁금해하는 걸 바로바로 찾아봐줬고, 무명은 그때마다 컴퓨터라는 것이 마력을 지닌 생명체라도 되는 것처럼 오감을 집중하여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러니까 이제 심사를 통해 담당자가 배정되기 전까지 기다리라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필요한 몇 가지가 있으셔요.”



지아는 현실적으로 취업을 위해 무명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짚어주었다. 시시콜콜한 내용일 수 있지만, 정작 맨몸뚱이로 낯선 세상에 던져진 무명 입장에서는 하나 같이 소중한 정보들이었다. 특히 내일배움카드 신청은 지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은 핸드폰이 있어야 취업 알선 연락도 바로바로 받을 수가 있고, 지원한 기업으로부터 합격, 불합격 통보도 받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폰이 있어야 센터에서 보내드리는 문자나 전화를 받기 편하실 테고요. 기본요금이 매우 저렴한 상품도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효도폰 중에서도 필수 앱 정도는 깔고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는 제품들도 많다고 하니까 한 번 알아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무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쥔 후,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지아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덕오의 얼굴은 무명의 불끈 쥔 두 주먹보다 훨씬 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뭐? 핸드폰? 연락? 그게 무슨 말이야!’



무명과 마주한 채로 상담을 직접 진행해 본 지아의 판단에 따르면, 무턱대고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제공받는 것보단 한 번쯤 쉬어주면서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부분부터 점검을 하고 마무리 짓는 게 무명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덕오가 생각하기에도 당장 프로그램 개발자라는 헛바람이 이미 무명의 허파에 가득 들어차 있는 듯하니 차라리 시간을 두는 편이 나아 보였다.

무명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평생 주먹만 단련해왔던 무명은 갑자기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한 자극에 가까웠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 경험해보지 못한 공부를 시작한다는 사실에 고무될 정도였다. 물론, 하루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 백무혈을 제압해야만 한다는 강박도 있었지만, 무명은 누구보다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내였다. 전혀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기회를 살피는 게 최선이라는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현실과 별세계(別世界)라는 극단적인 괴리감 속에서도 그가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오랜 시간 무공 수련을 해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주변인들의 관심을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종일 무명과 함께 시간을 보낸 덕오는 현실에 뿌리를 강하게 내린 몸이면서도 오히려 초조하고 괴롭기만 했다. 그의 귀에는 지아가 무명에게 말한 ‘문자나 전화를 받기 편하실 테고요’라는 말만 맴돌았다.

‘아냐,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덕오는 숨을 고르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의 관중들과 끊임없이 터지는 촬영 조명. 팔각의 철창 링 속에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승리의 포효를 하는 무명. 잠깐, 지금은 좀 괘씸하니까 멀쩡한 얼굴보다는 몇 대 쥐어터진 몰골로 해두자. 기왕이면 눈두덩이 붓고, 얼굴 곳곳에 출혈도 좀 있는 편이 좋겠다. 덕오는 그 옆에서 무명의 승리가 곧 자신의 승리인 것 마냥 기뻐하며 무명의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린다. 무명의 승리로 생긴 막대한 파이트머니를 덕오가 나눠가질 거란 생각에 트로피의 무게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그저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그래, 지금 좀 팍팍하더라도 저 양반을 구워삶기만 하면 그만이야. UFC로 보내기만 하면 게임의 결과는 뻔한 거라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 힘들어서 금방 포기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일단 저 양반에게 컨퓨터 프로그램이 뭔지, 코딩이 뭔지, 그런 전문적인 내용은 기초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신 차리겠지!’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승리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덕오. 덕오는 부드러운 눈매로 바꿔 무명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뭐, 일단 지아 말대로 휴대폰부터 개통하고 봐요. 그리고 저녁에는 제 친구를 같이 좀 만나고요.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 있어요.”



“오, 역시 처사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귀인을 소개해 주시려는 겁니까?”



“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이 남중, 남고, 공대생 출신에, 요즘에는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무슨 말인지 대충 감이 오세요? 프로그래머에 관심이 많다고 하시니까, 아마 형씨에겐 끝내주는 귀인이 될 거다, 뭐 대략, 그런 말이다 이거죠.”

말을 마친 덕오는 폰을 꺼내 연락처에서 ‘국영수’를 찾았다.

“영수냐? 형이다. 나올 수 있겠어? 조금 늦는다고? 그래도 마치긴 마치지?”



무명이 덕오의 친구 영수와 만난 건 깊어지려는 밤의 문턱쯤이었다. 영수 회사 인근의 호프집에서 덕오와 무명은 맥주 한 잔씩 나눠 들고서는 애꿎은 마카로니 과자만 몇 차례 비워내고 있을 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호프집의 문이 열리고 가느다란 체구의 국영수가 나타났다. 습관적으로 안경을 치켜 올리는 영수의 손끝을 따라 무명의 집요한 시선이 따라서 움직였다.

무명은 덕오보다 한발 앞서 자리에서 일어나 영수에게 허리를 굽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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