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무림지존, 취업준비생이 되다
10화.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노력이 시공간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였소.

등장인물

주인공 무명선사

: 구파일방의 태두, 소림사의 방장이자 무림의 지존. 무림의 앞날을 결정짓는 마교와의 대격전 중 적의 사술에 당해 우연찮게 차원을 이동하여 현실 세계 오게 된 무림의 지존. 현실 세계에 도착한 첫날, 오덕오와 만나게 되어 그의 도움으로 현실 세계에 적응해 나간다.
무림으로 회귀하길 희망하지만, 당장 마땅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오덕오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취업에 도전하다가 성공. 맡게 된 프로젝트까지 성공하여 업계에서 신화로 소문이 난다.

주인공 오덕오

: 평범한 30대 초반의 취업준비생. 우연찮게 만나 무명대사가 무공이 깊은 무림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무명을 이용해 자신의 막힌 기혈을 뚫을 계획으로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당장 갈 곳이 없는 무명을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시키고 자신은 그의 매니저가 되길 희망하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무명선사와 동거동락하며 고생한 끝에 취업에 성공. 기쁨을 맛보는 것도 잠시. 무명선사가 창업을 제안해 온다.

오덕오의 죽마고우 국영수

: 덕오의 표현대로라면, 남중, 남고, 공대생으로 진학한 비운의 캐릭터. 대신 그만큼 좋아했던 과목에 집중했었고, 현재는 원하던 직업을 가진 상태다.
말로는 매일 프로그램 개발자라는 자신의 직업을 한탄해 왔지만, 실상은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자부심도 크다.
덕오가 데려온 무명을 보고, 덕오가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덕오와 무명이 절친한 사이일 것이라 생각하고 무명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덕오와 마찬가지로 무명선사와 인연이 닿아 창업을 제안받게 된다.

무림지존, 취업준비생이 되다
10화.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노력이 시공간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였소.

글. 문수림

무명은 자신이 뱉은 말을 지켜냈다. 직접 기획하고 수행했던 <면접 제공 플랫폼 사업>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반응을 이끌어냈다. 회사는 무명에게 승진과 함께 앞으로 미래를 약속했지만, 무명은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눈이 돌아갔을 제안이었지만, 무명은 프로젝트에 대한 성과금과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만 챙겨서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덕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그만뒀어요? 아니 왜?”


“말하지 않았소. 난 이제 직접 회사를 차려서 게임을 만들어볼까 하오.”


“아니, 그러니까 왜요? 회사가 요직으로 승진도 시켜줬고, 급여도 인상했고, 아니, 급여가 다 뭐야? 인센티브를 어마어마하게 약속했다던데 왜 그만두는 거냐고요?”


“처음부터 그러기로 했으니까. 내가 다 말하지 않았소? 설마 처사님은 아직 회사에 그만둔다는 말도 하지 않은 게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여기 입사하기까지 제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옆에서 다 보신 분이 왜 이러실까?”


“알겠소. 오래는 기다려줄 수 없소. 이번 주 안으로 정리하고 나오시오.”


덕오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무명이라지만, 직장을 젓가락 반찬 옮겨 집어 들듯이 쉽게 고른다거나 그만둔다는 게 너무 기가 찼다. 무명의 실력이나 추진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자신의 관념을 깨버리는 무명이 이제는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해가 떨어지고 서늘해진 거리는 둘 사이에 만들어진 긴 그림자를 삼켰다.

“솔직히 말할게요. 처음 봤을 때부터 전 ‘형님’이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길 바랐어요. 무공이 그렇게 대단하시니까. 어떤 놈들이든 급소 몇 방만 꽂아주면 챔피언 정도는 우습게 될 거라고 봤거든요. 전 전문 트레이너 겸 매니저를 하고요. 그럼, 덩달아서 저도 고액 연봉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생각만으로도 황홀했죠. 솔직히 지구인들의 트레이닝 같은 것도 우스운 수준이실 테니까 제가 운동을 도울 필요도 없을 테고. 목에 힘 빳빳하게 주고 경기 스케줄만 잘 잡아주면 그만이지 않겠나 했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신 거 같아서 차라리 제가 무공을 배울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뭐, 지금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는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하여튼, 존경합니다. 네, 전혀 다른 세계로 건너와서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던 컴퓨터를 이만큼 다루시게 된 건 정말 존경합니다.”


덕오답지 않게 ‘형님’이란 단어에 진심으로 힘을 주어 말했다. 무명도 눈치를 챘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가볍게 목례를 해보였다.

“제가 속세를 떠났다고 해서 남자로부터 고백받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아닙니다. 무척 당혹스럽군요.”


무명은 괜히 농담을 질러보았지만, 덕오는 평소와 달리 눈빛이 흔들림 없이 강렬했다.

“존경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는 겁니다. 직장이, 일이, 다 뭡니까? 목숨줄이잖아요.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생활을 하고.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당장 간판 달린 사무실조차 없는 양반께서 뭘 저랑 같이 해보자는 겁니까?”


“게임을, 아니, 내 일을 만들자고 하였소.”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 덕오와 달리 무명은 한결 더 차분하게 덕오를 바라보았다.

“기혈 뚫기 위해서 같이 운동해 주신 것도 고맙고, 세상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신 것도 고맙고, 우리 부모님한테도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갈아타라는 게 말이나 되냐고요?”


“그래서 이번 주까지 기다려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마저도 싫다면, 내가 어찌해야겠소? 뭐, 사무실 차리고 직원들 부리면서 월세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때나 되어서 하시겠소?”


“현실적으로 그게 더 맞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이미 난 이곳에 없을지도 모르오.”


“엥?”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오. 내가 처사님에게 손을 내민 건 내가 떠난 자리를 이어받아 좀 편하게 지내시길 바라서 하는 말이오.”


“아니, 숫자 제대로 헤아리는 법은 아시죠?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일삼오칠구로 뛰엄뛰엄 하실까? 하나하나 말해보세요. 그때가 되면, 왜 이곳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어디 가시게요? 뭐, 세계 일주라도 하시게?”


“그렇소. 주머니가 제법 차면, 나도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소? 말했었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법 같은 걸 인터넷에서 검색으로 알 수는 없을 테니 말이오.”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듣기에 그렇게 썩 달달하게 들리지는 않네요. 아니, 여기서 자리 다 잡아놓고 나서 떠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길을 찾아서 떠날 거였다면, 돈도 돈이지만, 하루라도 더 빨리 떠났어야 하지 않나요?”


“처음에는 나도 조급증에 그럴까도 생각해봤소. 하지만, 이내 곧 생각이 달라졌다오. 생각해보니 난 백무혈에 의해 전혀 다른 시공간인 여기로 오게 되었지만, 그게 진짜 백무혈의 의지인지는 명확하지가 않소. 내 짐작이 맞는다면, 아마 백무혈은 특정 시공간을 본인이 직접 골라서 날 여기로 보낸 것은 아닐 것이오. 아마 그때 내 허리춤에 질러 넣었던 어떤 기물 때문이었을 테지.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이란 것은 여기서도 그런 기물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내가 시공간을 특정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어 내가 이 세계로 떨어진 직후의 시간대로 되돌아가는 것이오.”


“하, 이건 참… 미안합니다. 제가 옆에서 OTT 적당히 보시게 좀 말리는 거였는데… 드라마를 보셔도 너무 보셨네요. 대충 듣기에는 K-드라마는 아니고, 미국드라마쯤 되는 거 같네요. 뭐, 시간여행이란 소재가 참 재밌긴 재미있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서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는 건 좀 부담이 되네요.”


덕오가 혀까지 내두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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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마.”


“엥?”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도 모르시오? 터무니없는 말로 들린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래서 지금까지 미룬 것이기도 하오. 어떤 도전을 하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든, 그 피해와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넉넉한 경비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아니까 말이오. 하지만, 이제 그 길었던 시간도 얼마간 정리가 되어 눈앞에 그려낼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는 것이오.”


“그러니까 여차저차 어기영차 해서 집으로 돌아기기 위해 돈이란 걸 모았는데, 대충 모으는 법은 이제 알겠고,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 직접 창업하여 게임을 만드시겠다? 맞습니까? 그런데 누가 그러던가요? 창업해서 벌 수 있는 돈이 초대박이 난 프로젝트로 잘 굴러가는 회사에서 급여 받는 것보다 무조건 나을 거라고.”


“정확하게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도 맞지만, 내 주변에 도움을 준 모두에게 더 나은 내일을 나눠주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자기 사업을 할 때, 잠재력을 더 크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덕오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째서 저 인간은 저토록 성공을 확신한다는 말인가? 당장 내일이라도 성공해서 떠날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노력이 시공간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였소.”


“엥? 취업을 위한 모든 활동이 시공간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였다고요? 그럼, 제가 글로벌 대기업이라도 취업했으면, 막 이세계로 통하는 창구가 눈앞에서 열릴 수도 있었다. 뭐, 그런 말입니까?”


“나의 최종 목적이 시공간에 균열을 내어 집으로 되돌아가는데 있었다는 거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다짐하였소. 내게 도움을 주었던 모든 사람. 특히 처사님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삶을 살게 해주겠노라고. 기혈이 뚫린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힘으로 태산도 옮길 정도가 되게 해주는 것. 아니, 그 정도는 못 되더라도 기백만큼이라도 맘껏 온 세상에 뻗쳐 보이는 삶을 살게 해주는 것. 그게 내 목표였다는 것이오.”


덕오는 이제 정말 지쳐버리고 말았다. 고집스럽게 한 길로 곧게 내지르는 무명과 달리 덕오는 현실적인 계산들이 자꾸만 머리를 스쳐지나갔기에, 대화가 이어지는 것 자체가 이젠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 그러니까 다 좋은데,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아니, 솔직히 만든 게임이 잘 안될 수도 있잖아요? 지금 보니까 다른 인력도 구한 것 같지도 않고. 하면, 게임 만드는 법 같은 건 아무것도 모르는 나랑, 그저 코딩이나 잘 짜는 형님 정도가 다인데, 어째서 게임이 대박날 거라고 자신할 수 있느냔 말입니다.”


“그건 짧게 이야기해주겠소. 게임이란 건 모름지기 게이머가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여 옆구리에 찬 도끼날이 썩어나는지도 모른 채 푹 젖는 것이라고 보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기본이 무너졌소. 모든 게임들이 고인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소. 뉴비는 어디에도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오.”


“뉴비? 고인물? 이젠 그런 용어들도 다 섭렵하셨군요.”


“게임 개발자라면, 게이머들이 소통하는 커뮤니티 사이트 정도야 수시로 눈팅 해야 하지 않겠소. 어쨌든, 그런 추세요. 모든 게임들이 레벨 1~100인 유저들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행하지는 않소. 확장팩이니, 패치니, 하는 모든 추가적인 부분들이 레벨 101~최고 레벨까지가 대상이오. 새로운 게임들은 출시가 지연되고, 출시되어도 새로운 기능이나 시스템 도입보다는 기성 게임들의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연출만 살짝 바꾸는 정도인 게 이미 관습처럼 굳어졌소. 그러니 게임 시장 전체가 다시 마니아의 장르로 굳어지려는 거요. 신규로 게임을 즐기려는 유저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계속 높아만 져서 유명 게임이란 것에는 접속조차가 심적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할 게 있소. 결국 글로벌 히트작들은 대단히 단순한 작품들이었다는 거요.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접근이 가능하고, 뉴비라고 해서 심적 부담을 가지고 접속할 필요가 없었던 게임들이 시장을 훨씬 더 크게 이끌어갔단 말이오. 그래서 나는 여러 고민 끝에 게임 타깃을 40~50대로 잡으려고 하오. 그렇게 되면, 게임 내에서도 자연스레 순발력을 과하게 요구하지 않게 될 테고, 그건 또 어린 아이들과 비활동적인 젊은이들에게도 괜찮은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결정적으로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 이번에 만들 신작이 흥행을 하게 된다면, 타깃들이 쉽게 변심하지도 않고, 익숙해진 게임과 함께 나이 들어가게 될 거란 믿음도 있소.”


“네, 기획 의도는 알겠습니다. 다 좋습니다, 다 좋아요. 그런데 제작비는 어디서 끌어올 것이고, 게임의 비주얼을 담당할 인재들은 어디서 구할 것이고… 하, 제 말은 듣고 계신 겁니까?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 좀 대화를 했으면 한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건 출근해서 함께 논의하자는 거요. 이번 주 안으로 이전 직장은 정리가 가능하겠소?”


결국 덕오는 어떤 확답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고, 무명은 홀로 남아 몇 군데 전화를 돌렸다.

다음날, 날이 밝는 대로 눈을 뜬 무명은 다소 들뜬 마음으로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았다. 처음으로 그가 취업을 위해 발을 들였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무명은 그곳에서 이젠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창업에 관한 도움을 구했다.

“창업을 생각하고 있고, 필요한 인재도 찾아야 합니다. 우선 구직자들과 매칭이 되는 과정이 궁금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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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점심시간이 되어서는 국영수를 찾아갔다.

“이젠 저보다 몸값도 더 비싼 분께서 저를 직접 찾아주시다니 영광이군요.”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게임회사를 차리려고 합니다.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녁이 되어서는 다시 덕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혹시 금전적인 부분이 마음에 많이 걸린다면, 익월 급여일까지는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서 노트를 바닥에 펼쳐두고서는 그대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무명은 이전처럼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고도로 집중된 내면의 정신세계 속에서 게임 기획과 코딩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노력이 시공간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였소. 이번 게임은 내가 성장했던 소림사를 배경으로 할 것이오. 동자승의 수련 과정을 조각내어 여러 퀘스트와 미니 콘텐츠로 만들어 초기 성장 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오. 이후 청년기에 접어들어서는 RPG요소를 부각시켜 마치 이전과는 또 전혀 다른 게임을 즐기는 듯한 다양함도 줄 것이고.’


초기 기획을 다듬은 후, 무명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시간이 새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무명은 이부자리에 몸을 눕히고, 자신에게 일격을 가하던 백무혈을, 아니, 이세계로 떨어지던 그 순간을 잠시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꿈나라로 떠나기 직전, 스마트폰을 열어서 <정저우 신정 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였다.

한편, 퇴근 이후에 바쁜 건 덕오도 마찬가지였다. 무명이라면, 자신의 말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무슨 짓을 하긴 할 사람이었다. 여러모로 현실적인 부분들을 더 따져봐야 할 테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 재단하여 무명의 제안을 깡그리 무시해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무명의 재능이 너무 터무니없는 수준이니까.
덕오는 최근 히트작 게임들 리스트를 뽑아서 자신의 모바일에 차례대로 깔아보고 하나씩 튜토리얼 플레이를 해보고, 게이머들의 리뷰도 빠짐없이 살펴보았다. 무명의 시장 분석대로 대부분의 게임들이 얼마간의 진입장벽, 심적 부담요소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게임이 히트치고 나서 회사가 구색을 제대로 갖추게 되면, 무명은 떠나버리는 걸까?’


괜한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워지던 찰나에 영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무명의 제안에 관한 내용이었고, 영수 역시 감히 직장을 옮긴다는 생각은 않고 있었던 터라 당혹스러운 목소리였다.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하면 재미는 있을 거 같아. 그런데 모르겠어. 내가 너처럼 코딩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함께 일을 한다면, 아마 내가 회사의 살림을 살아야겠지? 그런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취업과 창업은 확실히 다른 거니까 말이야.”


“맞아, 취업과 창업은 또 전혀 다른 거니까. 그런데 또 업계에서 하나의 프로젝트로 단박에 전설급이 된 양반의 말을 모르쇠하는 것도 이상해. 그건 아무리 운이 따라줬다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서 일단은 다음 달까지 말을 해주기로 했는데, 정말, 모르겠다. 인생을 걸고 괜한 모험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렇게 둘 모두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다음날이 되었다. 덕오에겐 이른 아침부터 무명이 남긴 문자메시지가 수신되어 있었다.

‘직접 이곳의 소림사를 찾아가 봅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보름 정도? 다녀와서 남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아니, 그냥, 지금 말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처사님이 나와 함께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습니다. 저와 함께 한다면, 게임 출시 이후의 수익을 나눠가질 테니 금전적으로는 걱정이 없으실 겁니다. 사실 이건 처사님을 위해서 좋은 결정이라기 보단 제가 제 마음의 빚을 덜어내는 것이니 제게 좋은 겁니다. 반대로 처사님이 지금 회사에 남는 걸 선택하신다면,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안정적으로 미래를 건설하시는 길이니 처사님을 위해서 좋은 결정일 겁니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시든 사실 제가 진정으로 전해드리고자 했던 뜻은 전달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처사님이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처사님의 잠재력은, 그 기백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결 같은 방법으로 고집을 피우다 보니 지금까지 취업이 당장 좀 어려웠을 뿐인 겁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취업 자체가 당신의 꿈이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취업이 정녕 당신의 목표 지점이었습니까? 저의 목표는 취업이 아니었습니다. 취업은 과정에 불과했죠.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간다? 그 역시도 저의 목표는 아닙니다. 귀향 자체가 과정에 불과합니다. 저의 목표는 <취업하여, 귀향한 후,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백무혈을 제압하고, 다시 무림에 안녕을 꽃 피우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든, 늘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노력은 결국, 지금의 작은 성공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적지를 위해서였다는 겁니다.’


덕오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바라보았다. 취업과 창업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리고 분명 취업은 덕오 인생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창업이 목표도 아니었다. 아침부터 무명이 던진 메시지는 잠잠하던 덕오의 인생에 커다란 파란을 일으켰다.

‘목표는 항상 행복에 고정되어 있었지.’


출근 준비를 멈추고, 덕오는 폰을 들어 답장하기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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