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무림지존, 취업준비생이 되다
2화. 소승도 무전 취식할 생각은 없소

2화. 소승도 무전 취식할 생각은 없소

글. 문수림

한겨울에 반팔 차림을 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쳐다보는 행인. 당황해서 먼저 말을 걸긴 했지만, 덕오는 곧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상대는 낯선 사람인 것도 모자라 결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괜히 더 꼬였다가는 머리만 아플 수 있단 생각에 냉큼 등을 돌려버렸다.

“처사님, 여기가 어딥니까? 전 급히 돌아가 봐야 합니다!”



“뭐, 지하철을 찾으시는 거라면 건너편으로 가셔야 해요.”



무명은 덕오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그에게로 다가와 팔을 잡아끌려고 했다. 당황한 덕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사적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괴상한 비명은 덤이었다.

“우와아아왓!”


“아니, 처사님. 그러지 마시고 우리 서로 통성명이라도 합시다. 전 소림사의 방장인 무명선사라 하옵니다.”



“저, 저, 저보고 하신 말씀 맞으세요? 아니, 아저씨가 방장인지, 주방장인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대체 저를 언제 보셨다고 그러세요?”

덕오는 눈이 오는 길 위를 쉬지 않고 달려 지하철 두 정거장 가까이 되는 거리를 내달렸고, 스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빠른 걸음만으로 덕오를 쫓았다. 충분히 따라잡아 앞지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붙어서 덕오가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결국 치솟았던 아드레날린이 가라앉으며 덕오의 다리도 힘이 풀렸고, 당혹스러워서 번잡했던 머릿속도 단순해졌다.

“그래서 대체 왜 나를 쫓아와요? 우린 남남이잖아요. 오늘 처음 본 사이!”



“맞는 말씀이시지만, 그건 조금 전까지였고요. 이젠 인연이 겹친 거죠. 일단 천천히 숨부터 좀 고르세요. 아니, 눈도 내리는데, 이러지 마시고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 이야길 나눕시다. 저기, 저 통유리로 밖이 훤히 보일 것 같은 저기가 좋겠구려.”



“그래요, 뭐, 좋습니다, 좋아요. 근데, 잠시만요. 행색이… 커피값은 있으세요? 아니죠? 없죠? 맞네, 맞아. 이거 신종 수법이었어!”


“아저씨, 제가 젊어 보여도 장기들은 다 기능이 별로예요. 제가 혈압도 높고, 당 수치도 제법 나오거든요.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요. 그러니까 그냥 깔끔하게 서로 가던 길이나 갑시다.”



“그러지 말고 제발 부탁 좀 드립니다. 저도 가던 길을 가고 싶은데… 도통 출구를 찾지 못해서요.”



그 이후로 둘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되기까지는 꽤나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커피보다는 편의점의 호빵을 나눠 먹은 게 먼저였고, 호빵 비용을 백수인 덕오가 군말 없이 치른 건 어디까지나 정체 모를 스님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처사님은 하시는 일마다 조금씩 틀어지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그건 기혈이 단단히 막혀서 그런 겁니다. 어릴 적부터 병약했다고 하시는데… 단전으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려 있지만, 나오는 길이 꽉 막혀 있어요. 이런 경우는 처음에는 당차게 일을 추진하지만, 오래지 않아 뭔가를 이루기도 전에 풀이 꺾여버리는 경우가 많죠. 분명 어릴 적에 폐가 약하셨을 겁니다. 그게 처음부터 병이 깨끗이 낫지 않은 채 자라면서 차츰 기운이 내려앉아 그런 겁니다. 이런 건 치료가 의외로 단순합니다. 신체를 조금만 단련해도 기혈이 다시 뚫려서 팽창한 기가 하늘과 금방 맞닿을 수 있어요.”



“아니, 제가 어릴 적에 폐렴 달고 살았던 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아니, 그럼… 기혈이 뚫리면 취업도 가능할까요?”



“취업? 일을 구하신다고요? 세상이 이리 넓은데, 안될 게 무엇이겠습니까?”



무명의 말에 덕오는 몸에서 뭔가가 강하게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게 눈 내리는 날 따뜻한 호빵을 야무지게 씹어 먹은 덕인지, 아님, 무명의 청량한 눈빛을 마주해서였는지, 딱 필요할 때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들려준 탓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덕오는 애써 더 무명을 밀쳐내지는 말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셔야 한다고요?”



무명은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소림사와 조금 전까지 백무혈과 마주하고 있었던 황산(黃山)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럼, 중국 분이세요? 그런데 한국어를 이렇게 잘하신다고? 하하하, 아저씨가 콘셉트를 또 이상하게 잡으셨네. 쩌 시 한궈어(這是韓國, 여긴 한국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어쨌든, 처사님께서는 소림사를 잘 아십니까?”



덕오는 무명의 말에 박장대소를 하며, 어렸을 적부터 즐겨봤던 홍콩 무협영화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고 무명의 눈앞으로 이상한 손동작들을 들이밀면서 호권이니, 사권이니, 당랑권이니 하는 권법 이름을 주야장천 읊어대기 시작했다.
무명은 한동안 그런 덕오를 한심하게 쳐다보나 싶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덕오가 무명을 집으로 데려가서 긴 옷으로 갈아입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무명이 순식간에 내리는 눈송이를 차례대로 밟으며 위로 솟구쳤다. 허공답보(虛空踏步, 허공을 걷거나 달리는 기술). 덕오가 그간 무협지를 읽으며 수십 번이나 상상했었던 장면이 눈앞에서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었다.
덕오에겐 분명 낯선 경험이었다. 길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을, 그것도 날씨 관념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는 옷차림의 낯선 남자를,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모셔오기는 처음이었다. 일단 무작정 데려오긴 했는데, 부모님에게 무명을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그건 다 덕오의 지나친 기우에 불과했다.

“덕오 왔냐? 저녁은? 안 먹었으면 좀 기다려. 너희 아버지 곧 들어오신다고 하시니까.”



대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덕오의 어머니 임지현 여사는 덕오를 쳐다보지도 않고 스마트폰에만 열중했다. 폰에서 들리는 음향효과를 들어보니 최근 새롭게 시작한 앱테크 활동 중이신 게 분명했다. 덕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명을 곧장 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친구랑 같이 왔어요.”



무명에게 옷을 갈아입히자마자 덕오의 아버지 오동팔이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특유의 헛기침과 앓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이어지는 임 여사의 잔소리가 모든 소음을 집어삼켜버렸다.

“아니, 왜 또 통닭을 사들고 들어와! 그럼, 미리 전화를 주던가! 괜히 또 밥했잖아. 꼬박꼬박 밥상 차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지 알아? 그리고 음식하고 제때 다 안 먹으면, 그것도 다 돈이야! 음식물 쓰레기도 치우려면 돈이 드는 세상이라고!”



곧이어 엎치락뒤치락하는 분산한 소리가 들렸다. 덕오는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당하시는 아버지가 참 딱했지만, 오늘은 중간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소동이 잠잠할 때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무명을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내 군대 동기야. 저기… 시골에, 아니 사정이 있어서 가족이 해외, 그러니까 중국에, 그래. 중국 시골에 사는 앤데, 뭐, 사정이 좀 생겨서… 며칠만 여기서 좀 지내면 안 될까?”



무명은 신세를 지는 입장인지라 눈치껏 합장을 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어머? 설마 스님? 출가하신 분?”



임 여사는 오동팔을 쥐어박던 손을 거두어 그대로 입을 가리는 데 썼다. 동팔도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며 무명을 찬찬히 살펴봤다. 여러모로 수상쩍은 면이 물씬 풍겼다.

“어, 어, 맞아. 출가한지 좀 됐는데, 사정이 생겨서… 글쎄, 이참에 다시 속세로 돌아오겠다는데? 근데 당장 묵을 곳이 없잖아. 그래서 내가 모른 척하기도 뭣해서. 며칠만 좀 있지 뭐.”



“며칠? 몇 달은 아니고?”



동팔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명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었다. 대충 덕오 또래처럼 보이는 것도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산에서 고생하면서 지냈는지 덕오보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간 봐왔던 덕오의 친구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정말 친구인 걸까? 전혀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이상한 사이비를 만나서 무작정 데려온 것은 아닐까?

“너무 염려치 말아주십시오. 소승도 속세의 이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무전취식을 하겠습니까? 여차하면 탁발을 해서라도 제 몫은 제가 알아서 해내겠습니다. 그저 당분간만 부탁을 드립니다. 밤에 눈 붙이고 다리 펼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합니다.”



무명이 다시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자 임 여사도 덩달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불교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그러는 모습을 보이자 동팔은 어이가 없어서 조용히 혀를 찼다.

“그래도 무슨 사정인지는 내가 들어봐야지 않겠습니까? 아니, 들어봐야지. 내 아들놈 친구라는데, 내가 말을 높여도 이상하고. 출가했던 몸이라지만, 다시 속세에 끼여서 살 거라며?”



“아, 아버지, 그게…”



덕오가 난감한 얼굴이 되어 무명의 눈치를 보는데, 오히려 무명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팔을 바로 쳐다보고 말을 받았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소승은 사실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사정이 생겨 해와 달을 건너고, 물을 건너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여기 계신 오덕오 처사께서 저를 딱히 여기셔서 본인의 집까지 저를 데리고 오신 겁니다. 처사의 부모님들이시니 염려하시는 건 당연한 이치이십니다. 다만, 소승은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소림사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의 인연을 잊지 않고, 반드시 배로 갚겠습니다.”



“소, 소림사?!”



소림사라는 말에 가늘게 뜨고 있던 동팔의 눈이 갑자기 보름달처럼 커졌다. 까맣게 열린 동공이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니, 왜, 제가 그랬잖아요. 중국 시골에서 온 애라고. 소림사가 중국에서도 첩첩산중에 있는 곳이잖아. 그건 아버지도 잘 아시죠?”



“그렇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소림사는 오악 중 하나인 중악의 험난한 산줄기 위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들은 소림사의 현관 계단을 만나기도 전에 지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거, 정말 소림사에서 온 게 맞아? 그럼, 그걸 뭐라 그러지? 사형? 사제? 그 왜 같이 수련하고, 기도하고, 같이 생활하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네, 그렇지 않아도 전 저의 문파 식구들을 위해 돌아가야만 합니다. 당장은 돌아가는 길도 알아봐야 하고, 여비도 얼마간 챙겨야겠습니다만… 사실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긴 합니다. 제가 하루빨리 돌아가지 않는다면, 제 문파 식구 십만여 명의…”



“십만 명!”



십만여 명의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무명의 말을 잘라 먹으며, 동팔이 크게 소리쳤다. 십만 명! 그렇게 다시 외치더니 갑자기 덥석 무명을 끌어안기까지 했다.

“걱정 말고 푹 쉬다가 가시게!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관광도 좀 하고!”

덕오는 그제야 머리가 뜨거워졌다. 보험사 소장인 아버지가 괜히 태도를 돌변했을 리가 없다. 십만 명이라는 숫자를 듣자마자 무명과 무명의 문파 식구들 전부를 영업대상으로 점찍어 버린 것이다. 동팔이 무명을 뜨겁게 끌어안고 어깨를 흔들 때마다 동팔의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들도 따라서 춤을 췄다.

임 여사는 괜히 뿌듯한 얼굴이 되어서는 뒷짐을 진 채로 동팔을 거들었다.

“그래, 무전취식은 곤란하지. 뭐, 젊은 나이니까 취업! 적어도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하숙비 정도야 낼 수 있을 거 아냐? 덕희가 독립해서 나가고 집안이 적적해진 차에 잘 된 거지 뭐. 그래, 잘 되었어. "


”덕오, 네가 내일 네 친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좀 데려다줘라. 중국에서 왔으면, 이 동네 길도 잘 모를 거 아냐.”



덕오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을 잘 구슬려서 기혈을 뚫는 일만 남았다고 내심 기뻐하면서.

여기서 잠깐!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는 구인ㆍ구직자를 위해 다양한 고용복지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에겐 취업지원을, 구인업체엔 인력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죠.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고용센터(고용부), 일자리센터(자치단체), 복지지원팀(복지부, 자치단체),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여가부), 서민금융센터(금융위), 제대군인지원센터(보훈처)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초기 상담 후 기능별로 구분되어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G_5797.PNG
만족도 조사 콘텐츠 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