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프리뷰

금보다 귀한 시간
‘시성비의 시대’

시간의 가성비

‘시간이 금이다’라는 말이 여느 때보다 실감 나는 요즘이다.
더 나아가, 시간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도래했다.
콘텐츠는 물론, 생활에 필요한 장보기, 빨래, 청소, 심부름까지 시간 대비 성능을 따지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글. 한국경제매거진 강은영 기자

똑똑한 시간 소비
따지는 MZ

“어제 환승연애 마지막화 봤어?”, “아 그거 너무 길어서 나중에 몰아보기 보려고”. 요즘 흔한 MZ세대의 대화다. 본방 사수는 요즘 듣기 힘든 단어가 됐다. 프로그램 시작 시간에 맞춰 TV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던 때는 지난 지 오래다. 이제 콘텐츠 소비의 ‘때’를 결정짓는 주체가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됐다.

유튜브와 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등 각종 OTT(Over The Top) 플랫폼 덕분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시대다. 게다가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숏츠 등 점점 짧고 굵게 메시지를 전하는 콘텐츠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또 영상의 속도를 빠르게 조정해 시청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3개월 이내 유튜브, OTT 시청 경험이 있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69.9%가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 대비 성능, 즉 ‘시성비’를 따지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시성비는 일본의 ‘Time Performance(타임 퍼포먼스, 타이파 タイパ)’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타이파는 일본에서는 이미 2022년 신조어 대상을 받은 개념으로, 가성비를 뜻하는 ‘Cost Performance(코스트 퍼포먼스, 코스파)’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고자 하는 현상, 더 나아가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짧게 끝내려고 하는 풍조를 가리킨다.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역시 책을 읽어 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강의가 비는 시간을 활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대학생을 위한 ‘타이미(タイミー)’가 인기를 끄는 등 시성비가 노동 시장과 산업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소정의 비용과
기꺼이 바꿀
의향이 있는 ‘내 시간’

요즘 현대인은 정말 바쁘다. 출근도 해야 하고, SNS도 해야 하고, 뉴스나 기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알아야 한다. 유행하는 콘텐츠나 영상, 밈도 알아야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바쁜 생활 속에서 시간은 너무도 한정적이다. 지긋이 앉아 드라마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볼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미리 판단하곤 한다. 유튜브 검색창에 ‘1분 요약’이나 ‘결말 몰아보기’ 등을 검색하면 다양한 영상이 뜨는 이유다. 유튜브 프리미엄 역시 시성비가 반영된 대표적인 예다. 광고를 시청하는 시간 대신 구독료를 지불하고 더 빠르게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하겠다는 심리인 것이다.

시성비는 비단 콘텐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장보기와 빨래, 청소, 집 정리 등 각종 생활서비스에도 적용된다. 이에 청소나 세탁 등의 가사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앱 시장 분석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미소·청소연구소·대리주부·런드리고·오늘의분리수거 등 홈서비스 앱을 설치한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2020년 4월 120만 명에서 작년 4월 기준 350만 명으로 증가했다.

돈으로 시간을 똑똑하게 소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롭게 부상한 트렌드를 적절히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환경에서도 또 다른 기회요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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