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APRIL / vol.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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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몸집에 가득 실린 화물.
초보 운전이라면 화물차 옆에서 움찔하신 경험 모두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상상하는 일이란 좀처럼 없기 마련이죠.
세상 모든 산업을 잇는 동맥이라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매일 운전대를 잡는 김지나 지부장을 만나
화물차 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권찬미 / 사진박찬혁

Start driving

좋아하는 일에 성별이 어딨나요

아침이 밝으면 늘 시동을 겁니다. 경쾌하게 차가 깨어나는 소리와 함께 천근만근 무거운 몸도 일깨워 보죠. 아침 7시에 출근해, 오전 8시부터 저녁 8까지 매일 12시간 남짓. 종일 무거운 컨테이너를 나르는 일. 그의 일터에는 동료들의 웃음소리나 소란한 사무실 소음은 없습니다. 다만 홀로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앉아 간혹 들려오는 경적을 들을 뿐이죠. 하지만 그는 이 고독한 일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큰 차를 운전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단순했죠.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일을 시작할 때, 여자라는 사실이나 나이 같은 진입장벽은 별로 염두에 두지도 않았어요. 그냥 하고 싶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죠.”

2016년 화물차 운전을 시작한 김지나 지부장은 조선업계에서 일하는 남편이 직장 폐업으로 임금 체불 문제에 시달리자, 화물차 운전직에 도전했습니다. 어려운 각종 면허증 취득도 40대 여성이라는 장벽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어 달 화물차주에게 고용되어 운전하다가 적성에 잘 맞는다고 느끼고 이내 직접 차를 사서 화물차주가 되어 운전을 했죠. 올해로 물류업계에 종사한 지도 벌써 어언 6년 차. 그간 그의 삶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Turn on the blinker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픈 사람들

“화물운송업은 크게 몇 가지 종류로 나뉘어 집니다. 일반화물, 물류, 오일, 컨테이너, BCT 등의 분야가 있는데요. 저는 컨테이너를 부산 신항 배후단지에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아는 것과는 달리 이 컨테이너를 운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분류하고 옮기는 작업까지 화물차주들이 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더라고요. 이일을 하다가 컨테이너에 깔려서 다치거나 사망하는 동료들도 있어 충격이었죠.”

이후로도 그는 화물운송업계에서 보이지 않는 사고와 질병을 많이 목격했다고 말합니다.

“눈에 띄게 보이는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상하차 작업이나 고박 작업 등에서 다치는 분들도 있어요. BCT 운송의 경우 시멘트에 들어가는 유독 물질을 나르는 일인데, 이에 대한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채로 분류와 운송을 돕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업장의 사고가 단순히 교통사고로 처리된다는 점도 문제였고요. ‘나중에 질병이 발생했을 때 이 사람들은 어디에 호소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죠. 당시에는 화물차주는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는 때였어요. 아픈 상황에 재정적 어려움까지 겪는 모습이 안타까웠죠. ”

이와 같은 경험 때문에 그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 확대 소식을 누구보다 반겼습니다.

“화물차주의 고용보험 적용은 정말 많은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사자에게 기쁜 소식일 뿐만 아니라, 화물차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동시에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2021년 7월부터 개정 시행된다고 들었는데, 촘촘하게 만들어서 엄격하게 적용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Navigate the road

우리가 함께 가야할 길

“저는 물류 운송이 모든 산업을 연결하는 세상의 동맥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맥이 멈추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물류가 멈추면 세상의 산업도 멈추지 않을까요?”

김지나 지부장은 물류업을 세상의 동맥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세상의 동맥이 되어 산업과 산업을 잇는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그를 매일 운전대 앞에 앉게 하는 동력이죠. 동시에 그는 말합니다.

“화물차가 도로에서 마주하면 덩치가 크고 옮기는 것도 많다 보니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화물차 안에도 사람이 있다’고 말이죠. 저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출근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안도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요. 매일 운전대를 잡는 많은 분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모든 화물차 안의 ‘사람’이 더 존중받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