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골목길하면 최신 트렌드와 독특한 개성으로 가득한
그림을 떠올릴 것이다.
사람들이 소위 ‘핫 프레이스’로 찾는
모든 동네가 결국은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다.
특히 남영동은 일제강점기와
광복이라는 역사가 잔존해 이어지는 의미 있는 곳이다.
글. 정자은
사진. 오충근
1호선 남영역 1번 출구로 나와 2~3분 남짓 길을 따라 걷는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남영사거리를 중심으로 숙대입구역까지 남영동 특유의 골목감성을 즐길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소위 MZ세대 감성이 묻어난 ‘핫 스팟’의 시작이다. 이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한 카페의 경우, 1970~80년대 미국의 펍이나 바를 콘셉트로 잡아 내부를 꾸몄다. 레트로 감성의 살짝 촌스런 간판과 불투명한 유리벽, 호기심을 일으키는 외관은 내부로 발걸음을 끌기 충분하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LP감성, 특이한 이름, 빈티지 풍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카페를 등지고 좌회전해 골목길로 들어오면 건물마다 특색 있는 다양한 상점들이 줄 서 있다. 남영동 골목의 특징은 건물 하나하나 개성이 저마다 다양한데 있다. 오래된 건물의 큰 틀을 최대한 살려 가게를 꾸민 곳도 인상적이다. 간판이나 대문을 그대로 활용해 마케팅으로 쓰는 곳도 보인다.
한강로를 따라 직사각형의 지형을 지닌 동네가 남영동(南營洞)이다. 서울 남쪽에 군영이 있었던 것에서 그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남영동 내 일본군 주둔지를 미군이 이어받으며 사용했다.
인근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자연스레 이국적인 식자재도 함께 들어왔다. 부대찌개와 스테이크 전문점도 그 시기 자리 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스테이크 거리’로 불리며 스테이크와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이 몰리기도 했다. 1960대 초창기 유명한 가계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몇몇 가게들은 자리를 지키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남영동의 스테이크는 흔히 생각하는 스테이크와는 다르다. 초반에는 버터에 소시지와 베이컨을 구워 잘라 주는 것이 전부였단다. 여기에 스테이크와 각종 햄, 채소가 추가되면서 한국식 ‘모듬 스테이크’가 탄생했다.
최근에 새로 생긴 음식점들도 다양하지만 1960~70년대 한국식 스테이크 철판구이를 경험해보는 것도 남영동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이다.
남영동은 건물 자체가 작고 묘하게 일본가옥의 느낌이 난다. 용산 미군기지와 바로 맞닿은 동네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엔 ‘연병정’(練兵塲)으로 불리며 인근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다. 때문에 일본군의 가족이나 군무원들이 살았던 적산가옥이 일부 남아 있다.
현재 ‘남영 아케이드’라 불리는 용산공설시장은 과거 군인이나 일본 사람들이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찾던 시장이었다. 일제는 조선인과 구별해 신식 시장을 세웠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신식 건물이었겠지만 지금은 많이 낡고 허름해졌다. 1922년에 지어진 서양식 쇼핑몰인 이곳은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지금은 몇몇 상점들을 찾는 사람들로 그나마 발길이 이어진다. 콘크리트 외벽에 목재로 만들어진 일제강점기 건물, 한때 일본인이 살았던 적산가옥, 주변에 주둔했던 미군기지. 현재의 남영동은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은 동시에, 현대 감성이 새롭게 피어나는 곳이다. 남영동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에서도 이를 보존하는 것, 남영동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