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가의 말이나 사상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쇼펜하우어나 니체 등의 어록을 편집한 게시물이 SNS 상에서 화제 되는 것은 물론,
철학 관련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글. 강은영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삶이 괴롭다면 그냥 평소보다 많이 먹고 많이 자라”, “인생은 혼자다. 혼자서도 단단해질 줄 알아야 한다”. 냉소적인 친구나 선배가 해 줬을 법한 이 시시콜콜한 조언은 독일의 철학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남긴 말이다. 염세주의적인 이 19세기 철학가의 통찰력이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서점가 상황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와닿는다.
지난 9월 발간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강용수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이 쇼펜하우어의 어록과 사상을 풀어쓴 책이다. 이 책은 7개월 만에 30만 부 판매라는 기록을 세우며 일명 ‘쇼펜하우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라는 요즘 출판업계에서 그것도 철학 교양서가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에 안착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시작으로 서점가는 철학가의 생애나 사상, 명언을 다룬 서적들이 연이어출간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니체 역시 주목받고 있으며, 공자나 장자, 노자 등 동양의 철학가에 대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지금이 바로 철학의 르네상스’라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을 쉽게 풀어 쓴 책이 철학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
철학 열풍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감명 받은 문장을 필사하거나 철학가의 명언을 릴스로 편집해 공유하는 형태로 발전, 확산하고 있다. 취업과 고용, 내 집 마련, 노후 등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한 청춘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다잡을 자기 계발의 방법 중 하나로 철학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철학이 이토록 집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들리는 현실과 막막한 미래에 청춘들은 고민이 많다. 부모나 친구와의 고민 상담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자신만의 내밀한 문제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단단하게 내 안에 뿌리 내릴 심지가 필요하다.
청춘들은 스스로 이 심지를 품기 위해 철학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학교에서 인생을 현명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철학은 인생의 매 순간에 나답게 처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아마 그것이 지금의 철학 열풍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쇼펜하우어는 결국 삶은 고통이지만, 사람은 그 고통을 버텨내면서 성장한다고 봤다. 지금 청춘에게는 덮어 놓고 ‘모두 다 잘 될 거야’라는 희미한 낙관의 말보다는 ‘원래 사는 건 다 괴로운 거야’라며 냉소적이지만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말이 더 위로가 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