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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예술인으로 자신을 소개하면 으레 말하곤 합니다.
“와 멋있다! 저도 작가, 배우가 꿈이었어요.”
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일상으로 돌아온 예술인들의
삶은 그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죠.
화려한 무대 위 모습과 ‘예술인은 가난하다’는 편견
사이에서 오래도록 생계를 보장받지 못한 채
좌절했던
예술인들을 위해 2020년 10월,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글권찬미 / 사진박찬혁
Scene 1.
무대 뒤 그들이 사는 세상코로나19로 관객이 뜸해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극단. 텅 빈 관객석에도 불구하고 무대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뜨겁습니다.
“30만 원이요? 저는 40만 원으로 알았는데요.”
잔뜩 움츠린 표정으로 무대에 등장한 17년 차 연극배우 이종승 씨. 체홉 단편선의 극 중 인물로 분한 그의 옆으로는 각각 N년차 후배들이 온몸을 내던지며 자신이 맡은 인물을 표현하느라 분주합니다.
“그건 당신이 잘못 안 거겠죠. 저는 분명히 30만 원으로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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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노사 관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 계약서도 없이 부당한 갑질을 당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안톤 체홉이 살던 시절에도 여전했나 봅니다. 지난 2017년 창단된 극단 경험과 상상은 이처럼 다양한 노동자들의 삶의 희노애락을 보여주기 위해서 많은 무대를 준비하고 공연을 올렸습니다. 오늘의 인터뷰이 배우 이종승 씨 또한 20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무대를 지켜왔습니다. 한창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심각한 때에는 <젊은 건설 노동자의 이야기>라는 비대면 공연도 직접 준비해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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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객이 있든 없든 배우들은 늘 무대를 준비합니다. 요즘 시국에는 텅 빈 객석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배우들은 늘 텅 빈 관객석에 앉은 관객을 상상하며 연습하거든요. 그래서 코로나19 시국에도 무대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상은 거의 변한 것이 없어요. 다만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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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국의 일상을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옵니다. 무대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배우들은 무대 곁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찾게 될 관객들을 상상하며 매일 연습에 몰두합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수입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이종승 씨 또한 생계에 대한 고민이 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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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부터 건설 현장 일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면서 지내고 있죠. 사실 스무 살 연극을 시작할 무렵부터 목공 일을 배우면서 언제나 부업과 배우 일을 병행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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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에 상경한 그는 고깃배를 타거나 공장과 노점상에서 일하면서도 배우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Scene 2.
예술인은 가난하다는 편견-
그는 예술인이 가난하다는 것이 편견만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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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이 가난하다는 것은 편견이기도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죠. 실제로 저를 비롯한 대학로의 많은 배우가 N잡을 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보수로 살아갑니다. 오래도록 이런 삶이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버텨오긴 했지만, 예술인은 가난하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술인이기도 하지만,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근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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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배우로 살아온 20여 년 세월 동안 예술인으로 살 것이냐, 근로자로 살 것이냐 사이에서 많은 딜레마를 겪었다고 고백합니다. 동시에 사회가 함께 이 딜레마를 해소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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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고용보험은 우리가 참 오래도록 기다려온 제도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운 요즘 시국에는 더욱 시급하죠. 코로나19로 관객 없는 무대에서 몇 개월째 기다리면서 생계의 어려움에 노출된 연극배우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등 다양한 업계에 종사하는 예술인들도 같은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cene 3.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그는 오래도록 기다려온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가 잘 정착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1인입니다. 그것은 함께 하는 후배들을 위한 일이기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고 믿습니다.
“예술도 노동이고, 직업인으로서 생계를 걸고 이 일을 하 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예술인이 부족하거나 못나서 저임금과 제도 밖 상황을 견뎌온 것은 아니죠. 다 만 오늘 내가 올리는 무대가, 그림이, 노래가 조금 더 세상 을 풍요롭게 할 것을 꿈꾸면서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그의 말처럼 후배들은 오늘도 무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무 대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쑥스럽게 웃던 배우 강인성 씨 는 ‘무대는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예 술인 고용보험을 통해 앞으로도 예술인이 더욱 편안하고 안전하게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