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MARCH / vol. 550
vol. 550
  • >
  • 희망일터 >
  • 인생 2막

서브메인이미지

아담한 제주의 돌담길. 제주 조천읍에서 낮고 정겨운 길을 질러 구불구불 골목으로 들어가면
비밀의 화원같은 널찍한 숲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숲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돌하르방 미술관’.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서 열심히 열중하고 있는 수강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수강생들 옆에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안정향 씨가 있었죠. 자신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 옆에 꼭 붙어서 글씨를 쓰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글씨에 취하지 마세요. 마음을 다잡고 쓰는 것, 그게 캘리그라피입니다.” 제주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안정향 작가를 직접 만났습니다.

황정은 / 사진김재이

부산을 떠나 제주로

부산에서 나고 자란 안정향 씨는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을 운영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 즐거웠다는 그는 20년 동안 한 어린이집의 원장으로 일하는 시간이 행복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헌데 어느순간 자녀들이 독립하고 자신의 나이도 50대가 넘어서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삶에대한 갈증이 생기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건 제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헌데 50이 넘어서고, 자녀들도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 독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이 생겼던 것 같아요. 노년의 삶은 제주에서 보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기도 했죠. 그렇다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건강한 육체와 마음이 있을 때 제주에 내려가 보자 싶었어요. 주위에서도 새로운 삶을 꾸려보라며 모두 응원해주었고요.”

주위의 응원과 스스로의 다짐이 만나, 안정향 씨는 한치의 고민 없이 제주로 향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있듯 새로운 삶을 설계한 그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죠. 제주에 내려온 후 초반 2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오름을 걷고 그림을 그리고 마을을 산책하는 일만 반복했다는 안정향 씨. 그러던 중 취미처럼 그리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돌하르방미술관의 관장이자 서양화가로 활동 중인 김남흥 작가와 연이 닿으며 그림을 그려볼 것에 대한 권유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관장님께서 권유해 주시면서 저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 습작 그림들을 보시더니 이곳 미술관에 있는 갤러리에서 1년 후 전시를 해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제 그림에 대해 코칭도 해주시고 피드백도 주셨어요. 스승이나 다름없죠.”

인생 2막을 가능케 한 인연들

  • 누군가의 권유가 때로는 상상하지 못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곤 합니다. 안정향 작가의 제2의 인생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더 크고 넓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위에 언급한 김남흥 관장이며 또 다른 이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강수영 소장이었습니다.

  • “강수영 소장님이 아니셨다면 다시 제 2의 삶으로 도약하지 못했을 거예요. 2018년 봄, 제주에서의 삶이 조금은 막막하기도 해서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찾아갔거든요. 제주에서 2년을 푹 쉬었으니 경력이 단절된 상황이었어요. 헌데 경력단절이 아니어도 저의 이전 어린이집 경력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고요. 서서히 움직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을때 강수영 소장님께서 너무나 친절하고 상세하게 컨설팅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이음 일자리’ 1기에 선정됐죠. 이를 계기로 캘리그라피 강사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요.”

  • 부산에서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이미 취득한 상태였기에 이곳 제주에서 안정향 씨는 캘리그라피 강사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과 캘리그라피, 펜 드로잉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자신에게 딱 알맞은 일이라고 생각했죠.

  • “강사이자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저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도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50년 넘게 살았지만, 은퇴 후 삶은 저도 처음이니까요. 그 길을 안내해 줄 가이드가 필요한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저에게 아주 유익한 가이드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코칭해주셨으니까요. 일정 기간 이후에는 ‘이제는 전문성을 가져야 할 때’ 라면서 각 시기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스텝도 친절히 알려주셨어요. 덕분에 현재 ‘참새단 치유센터’ 라는 이름으로 센터를 만들어 강의도 하고 제 개인적인 그림 작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망설이기보다 저질러야 할 나이

그저 제주의 아름다움이 좋았을 뿐인데, 이곳에 내려오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다는 안정향 씨.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면서 보다 전문성을 살리고 싶어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미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50이 넘은 나이에 다시 배움을 시작한 것은 전문 작가로서 활동하고 싶은 그의 소망이 담겨있는 것이기도 했죠.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요. 안정향 씨는 지난 2018년 북촌 돌하르방 공원에서 ‘안정향 드로잉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2019년에는 드로잉 초대전 ‘마을을 걷는다’를 열었고, 같은 해 안산에서는 ‘제16회 안산국제아트페어 AIAF’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했죠.

“올해로 캘리그라피 강사로 활동한지 4년 차, 작가로 활동한 지는 3년 차에요. 요즘은 매일매일이 참 감사하고 보람돼요. 제 강의를 듣는 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고, 제 그림이갤러리에전시되는모습을보는것도참감사하고요.”

이러한 소통의 영역을 더 넓혀, 앞으로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하는 ‘노인미술치료’를 진행하고 싶다는 안정향 씨. 이러한 꿈 역시 가능한 영역이 될 수 있도록, 지난 2018년 ‘노인심리 치료사’, ‘노인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림이 많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어린이와 노년층까지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는 더 이상 뭔가를 망설일 나이가 아니에요. 하고 싶은 일들을 저지르며 살아야 할 때죠. 마음이 흐르는 대로 뭔가를 해도 괜찮아요. 인생에는 답이 없다지만, 그나마 가장 근접한 답이 있다면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것’ 아닐까요. 제주에 내려와서 전 두 가지만 생각했어요. ‘하고 싶은가, 아닌가’.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았죠. 그렇게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향해 살다보니 지금의 삶을 만들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원함을 용기있게 실행하고 성취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행복한 삶 아닐까요.”

제2의 삶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정향 씨는 ‘취미로 시작해도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인 만큼 한 번도 과감해 본 적이 없는 인생이라도 이제는 조금 더 과감해져도 되지 않겠냐는 대답을 건네며, 그녀는 오늘도 제주의 소담한 돌담길을 자신의 백지 위에 그려나갔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

시작은 취미의 재발견이었다. 나처럼 인생2막을 새롭게 출발하는 중장년층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고 싶다던 그녀. 유치원 교사에서 그림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강사로 눈부시게 변신하는 모습은
제주센터의 큰 보람이자 자랑이 되고 있다.

어쩌면 백마디의 말보다 ‘그림의 힘’이 가져온 놀라운 치유효과가 아니었을까?
그가 진행하는 ‘캘리그라피를 통한 마음치유’ 프로그램은 구직자들에게 높은 만족도와 희망을 주고 있다. 같은 베이비붐 세대로 그녀가 그리는 인생반전 드라마는 가장 생생한 교과서다.
그래서 종종 비슷한 1인 창업을 꿈꾸는 구직자들에게 멘토로서 이끌어주시기를 부탁드리기도 한다.
든든한 지원군이자 롤모델.

구직자에서 그림을 통한 마음치유강사로 활약하는 안정향 선생님의 인생2막은 우리의 시작이기도
목표이기도 하다. 마치 긍정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잘 하고 있고 잘 되실 거예요
안정향 선생님!

송왕준 컨설턴트 노사발전재단 제주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