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줄을 서는 게 일상이 된 거리지만 사람들에게는 이조차도 익숙하다.
그리고 걷는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지만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기에서의 시간은 아쉬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풍경은 어쩌면 익선동이 만든 문화가 아닐는지.
글. 김민영
사진. 정우철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2024년 지금의 익선동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동네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익선동이 서울 사대문 안에서도 외딴섬처럼 남아있던 소외된 한옥마을이었다면, 믿어지겠는가.
약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옥밀집 지역이었던 익선동을 이야기하려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1920년대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정세권 선생은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을 반대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그 당시 일본인이 익선동을 비롯한 서울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정세권 선생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1만 평에 가까운 익선동 땅을 작게 나누어 작은 한옥들을 지었고 조선인들에게 분양을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익선동 한옥마을의 시작이었다.
해방 이후 현대식 건축이 들어서고, 자본주의가 몰려오면서 익선동의 재개발 이슈도 떠올랐다. 이에 서울시는 기존의 한옥을 모두 헐고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웠지만, 무산되고 만다. 그렇게 익선동은 1920년대의 느낌을 간직한 채로 서울 도심에 남아있게 되었다.
2014년, 익선동에 매력을 느낀 크리에이티브 기업 익선다다는 익선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번화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익선동의 포근함과 옛 모습을 그대로 계속 지켜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에 새로움을 입혀 익선동만의 새로운 아날로그를 담고자 했다.
익선동이 품은 시간에 주목했고 그 시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익선’스러운 콘텐츠를 동네에 담아내고자 했다. 먹거리, 볼거리, 들을 거리, 느낄 거리 4가지 카테고리를 나누어 개별숍을 기획했고, 이야기가 있는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익선동이 단순히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익선동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문화생활을 누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익선다다를 시작으로 젊은 소상공인들이 익선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 음식점, 소품숍, 빵가게 등이 줄을 지어 오픈했고, 몇몇 가게들이 SNS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익선동으로 향했다.
익선동의 인기가 상승세를 탄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다. 이른바 뉴트로(New+retro) 트렌드가 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익선동은 뉴트로 중심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실제로 익선동에는 한옥을 그대로 살려 개조한 다양한 숍들이 대부분인데, 그 안에 요즘 핫한 아이템과 먹거리 등이 조화를 이루면서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북촌한옥마을, 서촌한옥마을이 고궁과 연결되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라면 익선동 한옥마을은 개화기 경성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다. 요즘은 대기업들이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열며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지금의 익선동에는 지금 유행하는 모든 것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상업화된 모습에 누군가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사라질 뻔한 동네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네로 바뀌었으니 결코 아쉬움으로만 남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풍경을 익선동의 문화라고 받아들인다면 익선동은 더 다채로운 모습과 볼거리로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한옥을 품고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익선동의 내일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