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제시하는 무언가를 일컫는 접사인 ‘힙(Hip)’이 전통(Tradition) 앞에 떡하니 붙었다.
전통문화를 ‘힙한’ 콘텐츠로 여기고 이를 적극적으로 경험 및 소비하는 트렌드인
‘힙트레디션(Hip Tradition)’이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이다.
글. 강진우
요즘 고궁을 찾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복 입고 경복궁 투어’는 외국인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요즘 경복궁을 둘러보면 한복 입은 이들 중 상당수가 우리나라 MZ세대다. 이들은 크게 두 갈래로 고궁을 즐긴다. 인근에서 대여한 한복을 입고 가벼운 마음으로 궁궐 곳곳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생과방’과 같이 고궁의 예스럽고도 새로운 면모를 한결 깊이 톺아보고 당시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 하나가 존재한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국가유산을 참신한 경험의 장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국가유산을 축소해 만든 이른바 ‘국가유산 굿즈’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 굿즈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특유의 미학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었는데, 그룹 BTS 멤버 RM의 작업실에 해당 굿즈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한 백화점의 팝업스토어에서 판매된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도 10만 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완판’됐다. 전통문화의 미학이 MZ세대를 매료시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소비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덕수궁 돈덕전에서는 ‘미키 in 덕수궁: 아트, 경계를 넘어서’ 특별전이 열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만화 캐릭터인 ‘미키와 친구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조선 왕실 유산을 배경으로 다채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작품화한 이번 특별전을 보기 위해 수많은 MZ세대가 돈덕전에 모여들었다. 만화 캐릭터와 국가유산의 오묘한 조화가 관람객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는 후문이다.
전통시장도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MZ세대에게는 생소한 먹거리와 놀거리가 이들을 불러 모으는 원동력이다. 특히 먹거리 야시장 느낌으로 리뉴얼된 충남 예산시장, 시장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전통적 디자인으로 꾸며진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지점을 들인 경동시장 등 시대상을 반영해 적절한 수준의 변화를 시도한 전통시장에 더 많은 MZ세대가 몰리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광이 전통문화 그 자체가 아닌, 개성 있는 콘텐츠와 경험에 대한 갈증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기에 조만간 사그라들 거라는 부정적 전망도 존재한다. 하지만 MZ세대가 전통문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전통문화 경험을 토대로 전통과 새로움이 조화된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킬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왕과 왕비의 별식을 준비하던 장소인 경복궁 생과방에서 이들이 실제로 먹었던 병과와 약차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체험 프로그램이다.
반가사유상을 고스란히 축소해 만든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굿즈로, 반가사유상 특유의 유려한 곡선미가 보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찹쌀가루와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반죽한 다음 기름에 지진 뒤 꿀이나 조청을 입힌 개성주악은 MZ세대에게 인기 높은 간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