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TV 영화 프로그램의 숨은 주인공이다. 저서 <육퇴한 밤, 홀로 보는 영화>에선 아들 ‘한방이’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씨네맘으로
등장해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다방면에서 활약해 온 프로 N잡러이자 열정 가득한 방송작가 천준아가 선보이는 부귀영화(북 With 영화)를 지금, 개봉한다.
글. 오민영
사진. 오충근
장소 협찬. 오얏리커피
반갑습니다. 지난 2000년 방송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어느새 25년 차에 들어선 천준아입니다. SBS <접속! 무비월드>부터 KBS2 <영화가 좋다>, EBS1 <시네마 천국>, MBC <출발! 비디오 여행> 등 영화 전문 프로그램을 두루 거쳐 왔고요. 최근엔 프리랜서로서 CJ ENM 채널인 OCN의 <2025 아카데미 시상식 TV 독점 생중계> 구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영화 축제로 손꼽히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생중계는 3년째 준비해 왔는데 올해 특히 볼거리가 많을 듯해요.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10개 중 2개는 비록 아직 국내 배급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영화 팬 여러분에게 익숙한, 나머지 여덟 작품이 워낙 훌륭해서 저 또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혁신 학교 6학년이자, 제가 저서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를 집필하게 한 모티브인 아들 ‘한방이’ 엄마로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답니다.
영화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면 매주 소개하는 많은 작품 가운데 유난히 뇌리에 머무는 대사를 발굴하곤 해요. 아이를 육아하면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명 ‘뼈 때리는’ 메시지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더라고요.(웃음)
이러한 발견을 자양분 삼아 나름대로 아카이브를 만들었는데 혼자 보기가 아쉬웠어요. 다행히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니 아직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로 출간한 책이 없었죠. ‘그럼 내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콘셉트를 구상하고 원고 세 편을 먼저 써서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단 이틀 만에 계약까지 성사했습니다. 해가 지나기 전인 2019년 12월 30일이라서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나요.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육아입니다. 그런데 ‘육아’에서 ‘아’는 아이(兒)뿐 아니라 나 자신(我)이기도 해요. 아이와 내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일화를 다채로운 영화와 같이 맛깔나게 버무렸어요.
앞서 소개한 아들 한방이가 처음 초등학교 입학해서 받아쓰기 시험 0점을 받아온 에피소드가 있어요. 굳이 어릴 때 선행학습을 무리하게 시킬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데 한마디로 충격이었죠. 옆집 아이는 90점이라는데요!(웃음) 그래서 같은 단어 10개를 5번씩, 총 50번 쓰도록 연습시켰습니다. 대망의 재시험 날 과연 결과는? 무려 30점이었답니다. 친구는 100점이었고요. 여전히 실망하는 제게 한방이가 남긴 명언이 있었어요. ‘나는 0점에서 30점, 친구는 90점에서 100점이니 우리 둘 다 똑같이 잘했어’.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는 양양이라는 8살 소년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아빠에게서 필름 카메라를 선물 받아 열심히 찍는데 인화한 사진엔 모조리 사람 뒤통수가 나와요. 어째서인지 물어보는 아빠에게 양양이 기막힌 대사를 합니다. ‘앞만 보고 뒤는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이는 거죠.’
당연하지만, 누구나 자기 얼굴과 달리 뒤통수는 바로 볼 수 없잖아요. 즉, 저는 한방이와 그 친구의 점수만 보고, 노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은 간과한 셈이었죠. 이러한 일화를 거치며 역시 육아와 영화는 저를 키우는 근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덧붙여 제가 느낀 감동을 더 많은 독자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하고 싶은 활동에 거침없이 도전해 왔어요. 좋아하는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곧 지치지 않는 열정의 비결인 듯해요. 대학 재학 중 영화 동아리에서의 추억, 작품 시나리오 집필을 시도하느라 몰두했던 시간, 각종 영화 프로그램 구성에 참여한 나날 등이 축적해 오늘날 저를 이뤄냈습니다. 또,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를 구상하는 기반으로 작용했죠. 현재 한겨레문화센터 영화 에세이 쓰기 강의와 각종 강연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 또한 여기서 비롯했고요.
실은 활동 범위를 넓힐수록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때론 적당히 하고 싶은 유혹이 생겨요. 그러면서도 ‘10년만 어리면 유튜버를 해보겠는데’하는 욕심이 있죠.(웃음)
지금 동화 한 편을 쓰고 있어요. 이 작품 또한 아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었죠. 한 여자아이가 초고층에 사는 외로운 할아버지와 드론으로 소통하는 스토리를 집필 중입니다.
그 밖에 올해 하고 싶은 활동이 많은데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의 후속으로 <눈부신 단역(가제)>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분명 영화에 등장했지만, 그간 눈여겨보지 않은 단역을 재조명하는 책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스쳐 가는 단역일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어떤 단역으로 살면 좋을까? 나쁜 단역들도 있겠고, 비겁한 단역들도 있을테고. 영화 속에서 이런 단역들의 얘기를 가져와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열정은 혼자가 아닌, 우리로서 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지만, 단지 생각에 그치는 분은 현실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친구와 함께할 수 있겠고요. 저처럼 거침없이 도전하는 성품이라면 한방이와 영화 같은 단짝에게서 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열정을 의미하는 패션(Passion)은 고난이란 뜻의 라틴어인 파티(Pati)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열정을 갖고 시도해 목표를 성취하는 여정엔 난관이 있을 수밖에요. 그럼에도 또 다른 봄이 찾아오는 3월, 자신 안의 새로운 열정을 꺼내 보세요. 연말엔 분명 ‘하길 잘했다’라고 미소 지을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