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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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각짤각 엿장수
가위침질 엿장수
“엿 사려” 소리 없고
골목길만 짤각짤각
일 전 줄게 엿 주소
걸레 줄게 엿 주소
동생하구 노나 먹게
쪼곰쪼곰 더 주소
엄마 아빠 일 간 뒤
우리 둘이 집 본다
집 보라고 일 전 준 걸
짤각짤각 엿 샀네
― ‘엿장수’ <동아일보>, 1936년 4월 2일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던 엿장수는 구태여 내가 왔노라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납작한 가위다리를 몇 번 부딪히면 어찌 알아듣고 동네 꼬마들이 엿장수 있는 곳으로 뛰쳐나왔지요. 달콤한 간식거리가 궁하던 시절, 유난히 반가웠던 엿장수의 가위 소리를 따라가 봅니다.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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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첫 직업, 소년 엿장수
엿장수의 등장 시기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엿’이 탄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겨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엿장수는 꽤 유명한 직업에 속했나 봅니다. 장이 들어선 날의 모습을 그린 풍속도에는 엿장수가 자주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의 엿장수는 시장 어귀 등 한 곳에 앉아서 장사하는 좌상(坐商)과 엿목판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파는 행상(行商)으로 나뉘었습니다. 행상에는 소년들이 많았는데요, 당시 일반 백성의 집에서는 아이라고 마냥 뛰어놀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돕거나 어머니를 따라 집안일을 했죠. 형편이 몹시 어려워 일찍이 자기 직업을 찾아야 했던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중 사내아이들이 가장 많이 했던 일이 바로 엿장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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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크기는 엿장수 마음대로
지금이야 엿도 사탕처럼 예쁜 모양으로 나옵니다만, 소년 엿장수들은 목판에 깔린 덩어리 엿을 예쁘게 모양 잡아 팔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그때그때 엿을 잡아 당겨 가위로 잘라 팔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양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늘었다 줄었다 ‘엿장수 마음대로’ 잘라 주었죠. 이 말이 대대손손 속담으로 전해진 것을 보면, 엿장수가 끊어주는 엿 크기가 아쉬웠던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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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바꿔 먹었던 그때 그 물건
시장에서 엿을 사려면 현금이 있어야 했지만, 농촌의 행상들은 곡식과 엿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근대에 리어카가 등장하면서는 곡식 대신 재활용 가능한 고물로 엿값을 치르기도 했지요. 용돈이랄 게 없었던 아이들은 빈 병이나 쇠붙이를 들고나와 엿과 바꾸었습니다.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집안의 낡은 물건을 엿과 바꿨는데 알고 보니 그게 귀한 물건이라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는 이야기도 동네마다 있는 에피소드죠. 바꿔먹은 엿은 이미 소화된 지 오래고 혼쭐이 난 것만 마냥 억울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엿장수를 다시 찾으면 동전 한 닢과 물건을 다시 바꿔주었던 추억, 피리 부는 소년처럼 가위 소리로 동네 아이들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던 엿장수는 이제 없지만, 관광시장이나 민속촌에서 엿장수의 모습을 재현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떠올려보세요. 집안 살림 돕겠다며 엿목판 들고 길에 나선 기특하고 짠한 소년 엿장수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