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업을 찾아서
연탄사정은 시골로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섬 지역은 사정이 더 나빠 22공탄 한 장에 85원을 받는 울릉도를 비롯하여 50원 이상인 곳이 흔하다. 당국에선 나무아궁이로 바꾸도록 권장하고 있으나 땔감 마련도 전 같지 않아 겨울을 앞둔 농어민의 주름살은 늘어만 간다.
― 1935년 5월 23일 동아일보
겨울이면 우리 부모님들은 밤사이 연탄불이 꺼질까 자다가도 몇 번씩 연탄난로를 살피곤 했습니다. 제 몸을 태워 집집마다 온기를 전하는 연탄불처럼 살을 에는 추위에도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누비던 그 이름, 연탄배달부를 기억하시나요?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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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난방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꾼
통금 시간이 지나 조용해진 거리를 누비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카만 연탄을 한 가득 담은 리어카를 끌고 “연탄이오”를 외치는 그는 바로 연탄배달부입니다. 1966년 정부는 한겨울 밤 연탄이 떨어진 주민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연탄배달부의 통금을 해제했습니다. 그만큼 연탄배달부는 온 국민의 난방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꾼이었지요. 산간지역을 제외한 도시에 개발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연탄보일러 사용 가구 수는 1986년 759만 가구, 연탄판매소는 2만 1,664곳에 달했습니다. 도시의 중심지마다 연탄공장이 들어서 있었고 일부 사정이 곤궁한 가정에서는 공장 주변을 돌며 부스러기를 모아 연탄을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연탄창고가 넉넉한 집이 그 동네에서는 가장 부자로 여겨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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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귀한 손님 연탄배달부
연탄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연탄을 배달하는 배달부의 존재도 귀했습니다. 1966년 정부가 연탄가격을 통제하면서 서민들은 겨울이 되기도 전에 미리 연탄을 확보하기 위해 월동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웃돈을 얹어주고서라도 연탄을 배달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지요. 장당 80~100원의 연탄 값에 배달비 10원이 추가되었는데, 연탄배달부가 귀한 동네일수록 배달비도 비싸졌습니다. 더군다나 섬이나 산간지역에는 배달이 어려워 배달부 자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 배달부들은 한 손에 집게로 4장씩 집어 총 8장, 28.8㎏를 한 번에 들고 날랐습니다. 겨울의 초입부터 시작되는 성수기에는 배달원 한 명이 하루에 1,000장이 넘는 연탄을 나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연탄배달부는 그만큼 체력과 인내력을 요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석유의 등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지금도 매년 겨울이면 사랑의 연탄 나눔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시절 직접 연탄을 이고 나르던 연탄배달부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탄광이 줄어들면서 석탄 채탄 가격이 계속 올라 석유와 연탄의 난방 비용 수준이 비슷해졌고 도시가스에 비해서는 훨씬 비싸진 탓입니다. 연탄 주문량이 줄어들면서 트럭을 이용해 한꺼번에 500장에서 1,000장의 배달만 하는 연탄배달 가게가 과거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던 연탄배달부의 발자취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어느 집도 추위에 떨지 않도록 밤늦도록 연탄을 나르던 그 시절 연탄배달부의 마음을 담아 올 겨울도 모두 따뜻하고 풍족한 날들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