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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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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시간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경상남도 창원시 위치한 동진금속은 국내에서 알루미늄 표면처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보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의 나상조 대표는 1994년 표면처리기능장을 취득한 전문 기술인으로 오랜 기간 숙련한 표면처리 기술을 자신이 설립한 회사인 동진금속에 고스란히 녹였습니다. 자신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그는 여전히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가 기능한국인이 되기까지 걸어왔던 발자취와 앞으로 걷고자 하는 길은 어떨지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글 민정민 | 사진 김지원

생계를 위해 선택한 공업계 진학

현재 60대에 속한 사람들이 어렸을 때는 먹고 살기가 힘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이 부유한 사람들은 대학진학을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경우는 공업계열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화학공학을 전공했었는데 적성에 잘 맞는 학문이었습니다. 재미가 있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표면처리와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화학공학과 제조업의 표면처리는 연관성이 굉장히 많거든요. 표면처리는 크게 보면 화학, 금속재료, 전기 이 세 가지 학문이 연결성 있게 다루어 져야 표면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화학공학과에서 화학과 금속을 함께 배우고 전기 또한 필수로 배웠기 때문에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접목하고 응용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회사에 나가 실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내 실험실에서는 이론적인 것이나 작은 부분들만 이루어지지만 업체에서는 장비와 설비가 충분히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만족스러웠죠. 특별한 계기나 드라마틱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어요.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 저에게도 기술과의 인연이 있었지 않나 회상해봅니다.

한 회사에서 17년간 근무, 도약의 밑거름 되다

나상조 대표는 실습을 나갔던 회사에 취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실습을 나간 회사에 취업을 하고 5년간 근무하게 되면 특례혜택이 있었거든요. 저는 이곳에서 아연도금이라는 공정을 보게 됐습니다. 전기분해를 통해 음극에 아연금속이 분리되어 붙게 되는데 무척 신기했습니다. 도금의 원리를 알게 됐죠.

“포탄, 대검, 수류탄 등 정말 다양한 피막처리(도금)를 경험했습니다. 그중 알루미늄은 무게가 가벼워서 포탄이나 수류탄의 피막처리 재료로 활용했어요. 지표상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금속이 알루미늄이에요. 일반적으로 쇠나 철이 가장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알루미늄이 훨씬 많죠. 미래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금속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윗분께 졸라서 관련 부서로 옮겼죠(웃음).”

뿐만 아니라 나상조 대표는 이곳에서 팀장이 되면서 많은 팀원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후배양성을 위해서 매일 팀원들을 교육시켰죠. 신입인 직원들에게 이론과 실기를 전부 가르쳤고 과정은 힘들었지만, 일정 궤도 이상으로 교육이 진행되니 여유가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라인에 가서 조언을 하고 돕기도 했죠. 가장 보람됐던 건 제가 가르쳤던 후배들을 전부 반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팀원들이 다 반장이 되니 저 또한 진급을 하게 됐죠. 제 것을 던져버리고 오히려 후배들을 챙기니 진급을 시켜주셨습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5~10년 정도가 흐른 후 나상조 대표는 서서히 사장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니까 경영진에서 보는 나와 내 스스로가 보는 나 사이에 차이가 생겼죠. 대학교 졸업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뒤 쳐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내 꿈을 다 이룰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회사를 다닌 지 14~15년이 됐을 시점부터는 1~2년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집사람과 의논을 했을 때 더 폭넓게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새로운 길을 가는 게 맞다는 아내의 지지가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퇴직금 2,300만 원으로 시작한 창업, 더 큰 꿈을 키우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을 때 나상조 대표가 수중에 들고 있는 돈은 겨우 퇴직금 2,3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이 금액으로는 회사로 쓸 만한 장소를 임대할 수도 없고 설비를 갖출 수도 없었죠. 10평 미만의 자그마한 장소를 준비했고 알루미늄 산업이 전도유망할 것이라고 판단해서 관련 표면처리를 준비했습니다. 설비만 2,300만 원이 들다 보니 유지비나 운영비는 전혀 없었죠. 집사람의 이모님께서 조금 여유가 있어 돈을 퇴직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빌려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저와 아내만 일을 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두 해도 아니고 7~8년 정도를 계속 함께 근무해줬죠. 일요일도 일을 해야 해서 업무량도 굉장히 많았어요. 나중에는 아이들이 조금 커서 일요일에 일을 할 때는 회사에 같이 데리고 나왔어요.”

그래도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동진금속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감히 이런 얘기를 해봅니다. 동진금속이 알루미늄 표면처리 쪽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기술력, 생산성에 자신이 있어요. 그만큼 노력했고, 그만큼 고민했습니다. 쉽게 얻은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것에 확신과 자부심이 있죠.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것도 마찬가지에요. 영광스러운 상이자 타이틀이죠. 내가 받을 능력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만큼 열심히 하고 후배들을 위한 부분을 해야 된다는 다짐을 합니다. 정말 많은 기능인이 있을 텐데 그중에 선정된 것은 정말 명예로운 일이죠.”

나상조 대표는 자신을 꿈꾸는 사람이라 말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한 사업체에 5년이라는 시간을 목표로 잡고 자가공장을 마련하는 꿈을 꾸고 실현했었죠. 이후 만학도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꿈을 키우게 됐고 지금보다 회사를 3~4배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5~6년 뒤 현재의 2공장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현재도 만족하지만 작년부터 생긴 꿈은 1만 평 규모의 회사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늦고 빠르고는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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