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노동 읽기
1995년 직장의 풍경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입는 옷에서도 하는 역할에서도 진급에서도 차별이 만연했죠. 하지만,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변화를 일구어낸 이들이 있기에 오늘날 비교적 유연하고 평등한 직장 풍경을 맞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시절 우리 일터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잠시 1990년대 사무실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글 권찬미 | 사진 제공 네이버 영화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
이곳은 1995년 모두가 우러러보는 대기업 직장. 칙칙한 양복 군단 사이에서 유독 튀는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있습니다. 업무능력은 퍼펙트 하지만,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8년째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며, 커피를 타고 사무실을 청소하는 단순 업무를 반복하고 있죠. 우리의 주인공 생산관리3부 자영(고아성), 마케팅부 유나(이솜), 회계부 보람(박혜수)도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하루하루 주어진 일과를 버티어 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사내 올라온 공고를 보고 눈이 번쩍 뜨입니다.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는 공고는 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죠. 대리 승진의 꿈은, 출근 전과 퇴근 후 옹기종기 모여 영어 회화 수업에 열을 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영어공부의 끝에서 과연 그들은 8년째 말단 직원의 딱지를 떼고, 꿈에 그리던 커리어우먼 라이프를 실현할 수 있었을까요?
“내부고발이라도 하게? 나서지 마. 우리만 다쳐”
성실하고 일머리 좋은 자영. 어느 날 공장에 방문했다가 검은 폐수가 다량 유출되는 것을 보고 맙니다. 정수되지도 않은 채 콸콸 쏟아지는 폐수를 보고 이상함을 느낀 자영은 회사의 비밀을 결국 밝혀낼 것을 결심하죠. 현실적인 유나는 그런 자영을 걱정스레 말리지만, 결국 정의감에 불타 회사 비리를 밝히는 일에 합류하고,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의 보람은 객관적인 분석으로 오폐수 검사 결과의 은폐 정황을 잡아냅니다. 실제 오염 결과지인 결정적인 증거물을 확보한 이들은 언론에 밝히기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죠. 하지만 역시 대기업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인 걸까요. 그런 그들의 노력이 좌초될 위기에 처합니다. 위기의 주인공들은 되려 내부고발자로 찍혀 징계와 부당해고의 위협에 처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아이 캔 두 잇, 유 캔 두 잇, 위 캔 두 잇!
부당한 징계의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주인공들. “아이 캔 두 잇, 위 캔 두 잇”을 외치며, 회사 비리의 핵심 인물을 결국 포착해냅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릅니다. 오폐수 문제를 방관이 비밀리에 진행되던 회사 인수합병 계획의 큰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해외 기업으로 강제 합병될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하기 위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전원이 한마음으로 뭉칩니다. 국내 최대기업이 저렴한 값에 해외로 넘어가게 된 위기의 날, 회의실에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직원들이 등장합니다. 그동안 주주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판 그들은 회사 인수 반대 의견을 취합할 주주총회를 열 수 있도록 서명을 받아냈죠. 결국 주주들의 반대로 회사를 지켜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커리어도 회사도 지켜냈네요. 꿈꾸던 커리어우먼으로 든든히 성장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