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플레이스

역사에 가치를 더해 트렌드가 되다

아주 오래된
대전 소제동 이야기

물건이든 장소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오래된 것’이 가진 매력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한다면 결국 낡은 것으로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 매력을 지키고 싶다면 오래된 것에 새로운 발상을 더해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본래의 모습보다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다시 활기를 찾은 소제동처럼 말이다.

글. 김민영 사진. 정우철

역사와 함께
희미해져 간 동네

지금의 소제동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핫플레이스’가 아닐까. 이렇게 정의를 내려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소제동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소제동에는 소제호(蘇堤湖)라는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지만, 철도 건설이 시작되자 매립되었다. 소제호가 있던 자리에는 1940년대 일본 철도 관료, 기술자, 노동자들을 위한 철도관사촌이 만들어졌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동, 북, 남쪽에 넓게 자리한 철도관사촌 덕분에 한동안 마을에는 활기가 도는 듯했으나 이마저도 잠깐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북, 남관사촌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소제동에 있던 동관사촌은 남게 되었지만, 도시화를 거치면서 동네는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 빈집이 즐비했고, 가로등 불빛은 꺼져갔으며, 녹슨 슬레이트와 깨진 담벼락들만이 소제동을 지킬 뿐이었다.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소제동의 가치에
주목하다

처참한 모습이었음에도 소제동이 가진 가치는 분명했다. 한쪽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동서교와 철갑교, 철도문화 시대의 중심이 되는 대전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간직한 이 마을만의 깊은 역사가 있었다.

도시재생사업을 이어오는 기업 익선다다는 이런 소제동에 주목했다. 소제동의 사라진 호수, 역사를 살려 문화, 사람이 공존하는 마을로 다시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게 익선다다의 소제동 프로젝트다. 역사적 가치로도 생활 터전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동네인 소제동을 다시 쓸모 있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소제동이다.

녹슨 슬레이트는 깔끔하게 바뀌었고, 깨진 담벼락들은 허물거나 그래피티와 벽화가 더해져 요즘 스타일로 다시 태어났다. 무엇보다도 머물기 좋은 카페, 개성 묻어나는 음식점들이 많이 생겨났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소제동으로

활기를 찾은 소제동은 특히 여행자들에게 반가운 여행지다. 대전역에서 5~10분만 걸어가면 소제동 골목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대전 여행 코스에 꼭 들어가는 동네가 되었다.

정겨운 골목길 풍경은 계속 걷고 싶게 만들고, 유니크한 담벼락은 멈춰서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특색있는 가게들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자체로 포토존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동서교를 그늘 삼아 쉬어가는 주민들과 여행자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걷다가 쉬기를 일삼다가 삼가교를 건너면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도 보인다. 번화한 소제동 중심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다양한 모습의 공존이 소제동의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것 같다.

소제동 개발 초기만 해도 과연 이곳에 누가 올지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소제동의 모습은 그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가게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니 말이다.

역사적 가치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힌 결과로 탄생한 2024 소제동. 뉴트로 트렌드의 정점에서 소제동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