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누르는 현실의 무게 속에서 여행을 꿈꾸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
우연히 들어선 골목길에서, 처음 방문한 카페에서··· 일상을 여행처럼 받아들인다면 모두가 여행자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세계여행 후 여행 크리에이터 겸 작가로 변신한 여행자 메이는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일상 여행자로서, 또래 청년들의 우울하고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글. 김지연
사진. 조병우
2017년에 떠났던 244일간의 세계여행 이후 꾸준히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해 오고 있고, 현재까지 3권의 에세이와 2권의 협업 책을 발간했습니다. 요즘도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여행 관련 강연도 했고, 여행 프로그램 촬영 차 외국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번아웃을 겪던 중 어떤 사람이 사하라 사막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고, 여행하기로 결심했었는데요. 여행을 떠난 이유와 여행 중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저처럼 고민 중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여행 중의 일상을 다루는 영상이 많지 않아 ‘내가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구독자가 차츰 늘기 시작하고 제 콘텐츠를 보고 여행을 다녀오셨다는 감사한 피드백도 받게 되면서 점점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여행 중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친구가 도착 전날 밤에 ‘길이 끝나는 게 싫으니 하루 더 있다 가겠다’고 했는데 그땐 그 말이 이해 가지 않더라고요. 결국 혼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뿌듯할 거란 기대와 달리 앞만 보며 오느라 놓쳤던 순간과 인연들이 떠올라 심한 허무감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여행길이든 인생이든 앞만 보고 달리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여행처럼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제겐 큰 선물입니다.
본인 스타일대로 좋아하는 곳만 여행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로 하는 여행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저도 처음에는 고민이 되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좋은 점은 출장지에서도 잠깐이나마 저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여행 크리에이터도 여느 직업과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는 책들이 많지만 당시 제 상황에 꼭 들어맞는 책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와 똑같은 상황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이들, 특히 또래 청년들에게 제 이야기가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저의 사적인 부분을 공개하는 거라 망설이기도 했지만, 단 한 명에게라도 마음에 와닿고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회귀’를 주제로 한 웹툰을 보면 주인공이 수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가 변화를 겪곤 하잖아요. 그런 웹툰에 저의 상황을 대입해 상상해 보니 지금 힘든 일들이 10~20년 후에는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망설이거나 두려웠던 일도 좀 더 쉽게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어려움을 극복할 때도 이전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책에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도 세계여행을 떠날까 말까 고민할 때 비행기표부터 끊었고, 책을 쓰고 싶었을 때 무작정 출판사 문부터 두드렸는데요. 작은 움직임의 시작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는 그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 <내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을 틀까?>의 한 구절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혹여 당신이 겨울의 눈밭을 헤매고 있다면, 그러다 우연히 내 자취를 발견한 거라면, 부디 당신이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의 발자국을 따라와도 좋고, 다른 방향으로 가보아도 좋다. 그게 어느 쪽이든 뚜벅뚜벅 걸음 끝에 기어이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 꽃내음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간 내게 온 모든 겨울이 내 뿌리를 가져갈 기회였노라고, 그렇게 회상할 날이 기필코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