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찾아온 막막함을 뒤로하고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박종한 씨는 나이와 성별이라는 한계를 두지 않고 생애 특별한 ‘진로 변경’에 나섰다.
예술적 감각이 충만한 아티스트에서 센스 넘치는 호텔리어로.
또 하나의 커리어를 이어가며 인생의 너비와 깊이를 넓히는 중이다.
글. 김주희
사진. 오충근
박종한 씨는 20여 년 동안 재즈팝 가수로 활동하며 프로 공연 업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남다른 감각과 센스를 바탕으로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디자인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특유의 사교성을 기반으로 서비스직을 겸업하기도 했다. 긴 팬데믹으로 공연업 침체기가 이어지고 AI 시대가 도래하는 등 갑작스러운 사회적 변화 속에서 그는 업(業)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AI로 대체 불가능하면서도 중년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러던 중 올해 초 중장년내일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상담 후 중장년내일센터에서 문자 메시지로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곤 했어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호텔종사자 양성 과정’을 운영한다는 안내 소식을 받고 마감일에 가까워 지원했습니다. 정원도 70명인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교육생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쁘고 설렜습니다.”
노사발전재단과 중장년내일센터가 함께 진행한 호텔종사자 양성 과정은 직무설명회, 직무교육, 현장실습, 면접 등으로 이뤄졌다. 박종한 씨는 매일 앞자리에 앉아 적극적으로 공부했다. 평소 서비스 직종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객실 정비, F&B 파트, 시설 관리 등 분야별 실무 중심의 커리큘럼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현업에 종사하는 호텔리어 등 훌륭한 강사진이 짜임새 있게 구성한 수업 내용 그리고 적절한 강의 시간 배분, 운영진의 세심한 배려 등 모든 게 좋았습니다. 구직자들이 지치지 않고 교육에 임할 수 있도록 식사와 커피, 스낵까지 제공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고요. 무엇보다 여행 트렌드 변화에 발맞춘 호텔 업계의 동향을 현실적인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호텔 ‘밖’이 아닌 ‘안’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접하는 소중한 기회였죠.”
교육 과정을 마친 후 박종한 씨는 채용 면접에 임했다. 꼼꼼한 성격을 가진 터라 룸메이드 직종을 선택하고, 현재 몸담고 있는 모헤닉호텔의 용역사 바딜컴퍼니에 지원했다.
“‘과연 남자를 룸메이드로 뽑아 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후 본부장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1순위로 선택됐다는 말에 제2의 인생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었죠. 모헤닉호텔 최초이자 유일한 남자 룸메이드라고 하더라고요. 벌써 입사 5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명동에 위치한 모헤닉호텔은 숙박객의 90%가 외국인이다. 객실관리부에 소속되어 있는 박종한 씨는 손님들이 쾌적하게 머물 수 있도록 객실 내부 청결 관리와 물품 보충 업무를 담당하는 중. 한정된 시간 안에 신속하고 완벽하게 일을 마쳐야 하므로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다. 신체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집중력과 센스, 판단력과 스피드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박종한 씨는 빠른 적응력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장점과 재능을 최대치로 발휘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20년 동안 해온 일과는 성격이 다른 데다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음악과 미술 관련 업무와 병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앞섰다. 그럼에도 그를 움직인 건 호기심과 도전정신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저 또한 우울한 시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모르는 분야를 그냥 지나치는 게 억울하게 느껴지더라고요(웃음).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움이 되었죠. 이번 취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이드는 왜 여자여야 하지?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라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린 거죠.”
박종한 씨는 주 5일제로 근무하며 휴무일에는 공연이나 디자인 업무를 이어간다. 수준급 영어 회화 능력 또한 갖춘 그는 컨시어지 서비스나 F&B 파트 등 직접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업무에도 도전할 참이다.
“퇴직 후 재취업을 꿈꾼다면 무조건 중장년내일센터를 방문해 보세요. 취업에 필요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습관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내가 모르는 세상과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 하나면 충분합니다. 별 둘, 별 셋, 별 넷 등 호텔 성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나 자신을 오성급으로 만들어보세요. 누구나 인정받는 일원이 될 테니까요!”
재취업이라는 문 앞에 서는 용기, 그 문을 활짝 여는 자신감, 뚜벅뚜벅 새로운 길을 나아가는 성실함으로 또 다른 커리어에 안착한 박종한 씨. 도전과 용기가 가져다준 행복은 이토록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