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가 담겨있는 인천의 한 거리.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거리가,
지금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오묘하게 넘나드는 개항장 거리를 걸었다.
글. 김민영
사진. 정우철
개항장 거리를 이야기하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는 일본의 강압으로 지금의 인천항인 제물포를 개항(항구를 열어 외국과 통상하는 일)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은 조선을 수탈하고자 인천에 은행과 회사, 별장, 호텔 등 여러 건물을 세웠다. 지금도 개항장 거리에 남아있는 옛 일본영사관인 중구청과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현재 1960년대~1970년대 생활사 전시관부터 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한국근대문학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그 당시 건물의 형태를 유지한 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는 공간들이 많아 ‘일본풍 거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개항장 거리 바로 옆에는 차이나타운부터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한중문화관이 자리해 마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자유공원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거기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면 더 다채로운 개항장 거리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탁 트인 인천항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곳이 그 옛날 개항의 시작이었구나’ 실감하게 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 1호인 ‘개항장 이음 1977’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은 근대역사문화인 인천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원도심 문화재생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인천도시공사가 근대건축문화자산을 매입 후 리모델링해 시민에게 돌려주는 도시재생사업이다. ‘개항장 이음 1977’은 사업의 1호로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해 1977년에 완공했지만, 지금은 보수 공사를 이유로 잠시 문을 닫았다.
이곳을 지나면 각국조계표지석과 구 제물포구락부가 나온다. 제물포구락부는 개항기 제물포에 거주하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외국인들의 친목 공간이었다. 지금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맞은편에 자리한 인천시민애집으로 가본다.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가 시선을 뺏는 이곳은 송학동 옛 시장관사로, 1900년대에는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으로 쓰이던 저택이다.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물이 공존하고,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1883 모던하우스, 제물포정원, 역사전망대로 재구성해 시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인천시민애집까지 둘러보고 정문으로 나와 조금 더 내려가면, 개항장 거리의 메인 풍경이 나온다. 작은 거리를 중앙에 두고 양옆으로 자리한 적산가옥 형태의 상점들이 눈에 띈다. 이 중에는 그 당시부터 이어져 온 건물도 있고, 그 모습을 본떠서 새롭게 지은 건물도 있다. 대부분 카페나 식당으로 운영 중이다.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골목 상권이 다시 활기를 찾은 건 2018년 개항로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개항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인천 토박이 이창길 대장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이곳을 다시 살리고 싶었다. 쓰임새를 다한 건물에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매력을 찾아주며 개항로를 살리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개항장 거리가 다시 활기를 찾은 데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역할도 컸다. 개항기에서 근현대에 이르는 여러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 공간은 원래 대한통운이 사용하던 창고였으나, 2009년 문화예술창작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렇듯 개항장 거리는 무수히 많은 역사가 흘러가는 중이다. 근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다가도 몇 걸음 더 움직이면 다시 현재에 와있다.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아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 거리의 미래는 또 어떤 모습일까. 그 옛날 항구를 열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였듯, 앞으로도 새로운 문화를 멋지게 담아낼 이 거리의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