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에 닿을 듯한 성곽길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가 성곽 안 동네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 발걸음을 옮겨본다.
걷다가 발견한 반가운 사실 하나. 왕이 사랑했던 행궁동은 이제 모두가 사랑하는 동네가 됐다는 것이다.
글. 김민영
사진. 정우철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궁동은 ‘화성행궁’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성행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행궁동이 품은 이야기가 궁금하거든, 화성행궁 이전에 수원화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당시 최고의 명산이었던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고 나서 축조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화성행궁은 수원화성 안에 있는 행궁이다. 행궁이란 임금이 나들이 때 머물던 별궁을 의미하는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12년간 13차례에 걸쳐 수원 행차를 거행했다고 한다.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 안 봉수당에서 열었다. 또한, 어머니의 침전인 장락당과 봉수당을 서로 통하게 만들어 불편함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정조의 화성행궁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화성행궁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와 혼자가 된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효심이 담긴 곳이다.
2024년이 된 지금까지도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은 수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행궁동이 뜨기 시작하면서 조금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사실 행궁동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수원의 구도심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었다. 인근에 수원화성이 있고, 마을을 둘러싼 성곽으로 인해 문화재보호법이 적용되어 개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반인들은 이곳에 발 디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3년 생태교통축제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 축제를 준비하던 수원시는 건물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며 거리를 재정비했다.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행궁동에 미술관, 카페, 공방 등이 문을 열면서 분위기가 밝아졌다.
골목마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해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행궁동은 ‘행리단길’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이태원 경리단길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주변에 성곽이 있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메인은 화서문부터 장안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인데, 지금은 워낙 유명해진 탓에 화서문, 장안문, 화홍문 일대를 아울러 ‘행리단길’이라고도 한다.
행리단길은 수원과 행궁동의 이야기가 담긴 벽화마을부터 성곽이 보이는 레트로한 분위기의 카페들이 어우러져 있다. 성곽이 보이는 카페들은 주말이면 대기를 할 만큼 많은 인파가 모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 생가터와 수원화성 북지터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누군가가 즐겨 찾는 카페로,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꽃밭으로 사람들을 반기는데, 최근에는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의 촬영지로도 사랑받고 있다.
버스킹하는 사람들,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성곽길에 오르면 성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행리단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거니는 성곽길 아래 행궁동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