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매체의 발달로 침체에 빠졌던 인쇄매체가 다시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날로그 열풍과 맞물려 독서가 나의 개성을 표현하는 멋지고 쿨한 일이라는 인식이 생기며
‘텍스트힙(hip)’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글. 김지연
MZ세대는 태아 시절부터 영상을 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해 영상매체와 친숙하다. 그런 세대가 레트로, 아날로그의 유행으로 ‘익숙한 것’이 아닌 ‘지나간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관심 갖기 시작한 후, 아날로그의 대표 격인 독서에도 주목했다. 독서는 이제 지루한 글 읽기가 아니라 나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글자를 의미하는 ‘텍스트’와 멋지다는 뜻의 ‘힙(hip)’이 합쳐진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는 이렇게 생겨났다.
텍스트힙을 즐기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독서하는 모습이나 읽고 있는 책 일부를 촬영한 ‘인증샷’을 SNS에 게재하는가 하면 도서 박람회에 가고, 도서 관련 굿즈를 소비하는 식이다.
독서에서 파생된 취미도 텍스트힙의 한 방식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필사다. 말 그대로 베껴 쓴다는 뜻의 필사는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인 먼 과거에는 책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현재는 책 전체를 옮겨 적거나 마음에 드는 일부만 뽑아 적는 등, 문장력 향상과 정서 함양에 좋은 취미 활동으로 사랑받고 있다. SNS에 ‘#필사’를 검색해 보면 게시글이 62만여 개에 달하고, 서점들은 필사하기 좋은 책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진열해 놓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모 온라인 서점의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도 필사 관련 책이었다.
필사는 여러 장점을 지닌 취미다. 첫째로, 문장력을 높이는 데 훌륭한 수단이다. 단순히 글씨를 베껴 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을 곱씹고 한 문장 한 문장 옮겨 적는 과정을 통해 글의 문맥을 파악하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작가들의 훌륭한 문장을 직접 옮겨 적다 보면 어휘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글씨체를 교정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외국어를 공부하는 경우 좋아하는 외서나 영상 콘텐츠의 구절을 필사하면 외국어 실력 향상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복잡했던 머릿속 스위치를 잠시 끄고 아름다운 문장에 몰입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독서 중 필사할 만한 좋은 문장을 발견하거나 책 한 권을 다 필사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필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경험 중 하나다. 필사는 책을 펼쳐놓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원하는 장소 어디에서든 할 수 있고, 비용 부담도 적어 누구에게나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젊은 세대 사이의 독서, 필사 열풍이 단순 과시용이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독서율이 감소하고 문해력 저하가 사회 현상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독서가 ‘힙’한 트렌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서 문화의 활성화와 전 세대의 독서율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시 등을 담은 책으로, 삶과 일상의 기쁨과 고통에 대한 헤세의 고찰이 따뜻한 문체로 담겨 있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이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문장으로 독자를 시와 글쓰기의 세계로 초대한다. 누구든 시를 읽고 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필사는 손글씨로 하는 것이 좋지만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 무작위로 나타나는 책 속 문장을 타자로 입력하는 사이트로, 책의 주제 선택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