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집안만 서성이며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통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인도 해결법도 없는 통증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내 안에,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글. 임혜린
어느 날 문득 찾아온 통증은 몸 전체에 산재했고 전신 피로감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어떤 검사에서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명을 건네주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통증의 원인과 해결법이 없다는 그 병은 나를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뭘 하고, 뭘 하지 않아야 아프지 않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봄이 왔는데도 바깥에 나가 뛰어놀 수 없었다. 통증이 처음 찾아왔던 시기의 나는,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 놓았다. 꽃, 하늘, 나무, 바다, 햇살, 공원, 바람 그런 것들. 침대에 누워 종이를 바라보며 그것들을 다시 보고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미한 다짐이었다.
내 통증에 듣는 약은 없었다. 끝에 가본 적은 없으나 운동적인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희미한 확신이 있었다. 백방으로 알아본 뒤 나와 같이 운동해 줄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재활 운동을 하며 느리지만 몸이 차츰 나아져 갔다. 모든 나아짐은 느리고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간 아픈 몸을 벗어날 거라고,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오 년 정도 통증의 시간에 살았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괴롭혔던 통증이 이제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나는 괜찮아졌다. 한때 다이어리에 ‘희망은 내일에 있어요’라는 메모를 적어두고 매일 보았다. 절망적인 오늘을 보지 말고 내일 다가올 희망을 보자는 말이었다. 매일이 통증의 날들이었지만 마음속에는 희망을 품었다. 긴 시간 나의 ‘오늘’은 절망적이었지만 나는 희망의 내일을 바라보며 버텼다. 조금씩 더 나아질 내일, 그리고 그 내일의 내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나의 통증도 오랫동안 그 말과 함께 했다. 하지만 멈춰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다. 장애물에 가려져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 희망은 그 자리에 있다. 아주 꿋꿋하게.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을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내 눈 앞을 가린 어두운 장막은 곧 걷힐 것이다. 밝은 빛이 내 안에 함께 할 것이다.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까만 방안에서 가만히 혼자 흐느껴 울더라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나에겐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희망은 나에게 있다.
임혜린
중·고교 영어교사 겸 싱어송라이터였다.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섬유근육통을 앓게 되고 희망을 꿈꾸며 에세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