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세계에서 수많은 일이 이뤄지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을 중시한다.
현생 인류가 20만 년 넘게 이어 온 아날로그적 일상을 수십 년 역사에 불과한 디지털 세계로 완전히 대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온 세상이 디지털에 ‘물성매력’을 부여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이유다.
글. 강진우
무언가에 푹 빠지면, 사람들은 이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한다. 예컨대 어떤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다면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의 정밀 모형(피겨)이나 굿즈를 갖고 싶어 하고, 관련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눈에 불을 켜고 티케팅에 나선다. 피겨와 굿즈를 갖고 놀거나 장식하고 전시회 속 다양한 오감 체험형 콘텐츠를 섭렵하면, 화면 속 애니메이션이 머릿속에서 한층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며, 결국 그 애니메이션을 더더욱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앨범만 듣다가 콘서트에 한 번 다녀오면 ‘덕질’의 심도가 깊어지는 것도,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배우와 소통하면 해당 영화와 배우에 대한 애착이 더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디지털은 우리에게 시각과 청각에 의존한 감각만을 선사한다. 이 둘에 더해 후각, 미각, 촉각까지 복합적으로 활용하며 살아온 인류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자극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디지털 세계 바깥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욱 다채롭게 경험하고 싶어 하며, 이러한 욕구는 디지털화의 속도와 비례해 커지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로 유명한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물성매력’이라는 신조어로 정의한다. 말 그대로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세상 속 물성의 매력이 디지털 시대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의미다.
손에 잡히는 물성을 통해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의 매력을 끌어올리려는 노력, 즉 ‘물성화’는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콘텐츠의 물성화가 가장 대표적인데, 최근에는 브랜드도 물성매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브랜드의 가치와 인지도를 효과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브랜드 및 제품과 관련된 이색적인 체험 공간을 속속 마련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브랜드를 넘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 중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직접 써 보고 느끼지 못하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각자가 보유한 핵심 기술과 유용성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실감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은 내부 고객인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문화의 물성화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근무 공간을 기업의 철학과 가치관에 맞춰 기획 및 구성하는 것은 물론, 임직원 전용 굿즈 등을 통해 애사심과 유대감을 높여 나가고 있다.
디지털 기술 발전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오감을 활용해 살아간다. 따라서 물성매력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꾸준히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한 모바일 금융 서비스 기업은 다양한 금융 콘텐츠를 담은 책을 출간했으며, 이를 통해 자사의 금융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물성화했다.
국내의 글로벌 가전 기업은 에너지 및 가전 관련 기술을 한데 모은 모듈러 주택을 제작해 기술의 혁신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자녀가 부모님께 매월 드리는 용돈을 현금으로 직접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행해 효심을 실감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