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기본 덕목으로 여겨지던 절약이 불현듯 불어닥친 욜로(YOLO) 열풍으로 사그라지는가 싶더니,
최근 요노(YONO)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지속되는 경기 불황, 커지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제 절약은 당연한 일이자 자랑거리다.
글. 강진우
요즘 SNS를 살펴보면 액정 깨진 스마트폰, 10년 넘은 노트북, 오래된 가구 등이 담긴 게시물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흥미로운 점은 사진 밑에 달린 글 속에 일종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스마트폰 카메라 부위 액정에 금이 가서 뿌옇게 나온 사진을 지우지 않고 당당하게 공유하며 ‘액정 깨진 폰 덕분에 자체 빛 보정!’이라는 ‘요노 소비’ 게시글을 남기는 것이다.
요노(YONO)는 ‘You Only Need One’의 줄임말로, 꼭 필요한 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의미다.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과소비적·과시적 트렌드인 욜로(YOLO)와 정반대에 서 있는 개념으로, 최근 MZ세대의 큰 호응을 받으며 핵심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급변한 소비 경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감소해 온 체크카드 발급 건수는 지난해 반등에 성공했다. 작년 9월 여신금융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체크카드 발급 건수는 재작년 동기 대비 약 928,000장 늘었다. 같은 기간 이용액 역시 4,605억 원가량 증가한 27조 5,537억 원을 기록했다.
체크카드 발급 건수의 증가, 그 배경에는 ‘절약’이 존재한다. 한 신용카드 플랫폼 기업이 지난 10월 1일부터 21일까지 3,347명을 대상으로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8%가 ‘과소비가 우려돼서’를 꼽았다. MZ세대가 어떻게든 소비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고 소비도 점점 늘고 있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의 2024년 1분기 패션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동기에 비해 두 배 늘어난 640억 원을 기록했는데, 구매자 중 78%가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NH농협은행이 개인 고객 3,200만 명의 금융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2024년 상반기 20~30대의 수입차 구매 대수는 재작년 같은 기간 대비 11% 감소했지만, 국산차와 중고차 구매 대수는 각각 34%, 29% 증가했다.
욜로 소비의 상징과도 같았던 맡김차림(오마카세)의 상승세도 한풀 꺾였다. 20~30대의 작년 상반기 뷔페 소비 건수는 2023년 상반기에 비해 4%, 양식 업종 외식은 8% 줄었다. 반면 농협 하나로마트의 간편식 소비 건수는 21% 상승, MZ세대가 식생활 측면에서의 소비도 줄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욜로를 지향했던 MZ세대가 급하게 요노로 소비 경로를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지속적인 경기 불황과 대내외적 불확실성 증가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한다. 자발적으로 ‘하루 지출 0원 챌린지’에 나서고, 주변 사람들과 지출을 줄이는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절약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실천하는 것. 요노 소비가 MZ세대에게 있어 궁상이 아닌 자랑거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