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흔들릴수록 더 깊게 내린다고 했다. 사고로 한 팔을 잃은 김나윤 씨는 유연하게 중심을 잡으며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왔다.
장애인 최초로 WBC 피트니스 대회에 참가해 4관왕을 거머쥐는가 하면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중이다.
절망 속에서 삶의 긍정을 길어 올리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 김나윤 씨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글. 김주희
사진. 오충근
피트니스 모델 및 선수, 배드민턴 선수, 강연가, 유튜버 등 기존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동시에, 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요즘은 차츰차츰 준비해 오던 책을 집필하고 있어요. 저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올해 선보일 계획입니다.
2018년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여름날이었어요. 주말에 친구들과 춘천으로 향했는데요. 주어진 휴일이 단 하루였던 터라 빠르게 이동 가능한 오토바이를 탔고, 커브 길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친구가 다가와 울면서 한쪽 팔이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얼마 뒤 119가 도착했고 헬기를 타고 서울로 와서 접합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패혈증으로 인해 결국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오히려 생각이 더 또렷해지더라고요. 절단 후 염증 부위가 사라졌고 컨디션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 혼자 가기, 걷기 연습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갔습니다.
한 팔로 생활하니 척추측만증이 심해졌어요. 통증이 발생해 재활운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박사님이 대회 출전을 권유하셨습니다. 근육 운동을 전문적으로 해본 적이 없던 터라 내 몸에도 근육이라는 게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내가 정말 완주할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장애인 인식 개선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누군가가 저를 보고 삶을 살아가는 데 희망을 얻길 바랐습니다. 첫 출전인 만큼 수상을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완주가 목표였거든요.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감사하면서도 얼떨떨했습니다.
사고 이후 절단 장애인을 검색했을 때 관련 영상이 많이 없더라고요. 특히 상지 절단 장애인과 관련된 정보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단 장애인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에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장애인 인식 개선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일상의 모습을 통해 담백하게 내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장애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내 생각을 전환하는 건 결국 자신뿐입니다.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꿔나가는 그 기저에는 ‘감사’가 존재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컸고요. 병실에서 한결같이 곁에 머물러준 가족, 저를 환자로 여기기보다 평소처럼 편하게 대해준 친구들, 직장에 복귀하도록 손 내밀어준 지인들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과 사람들이 다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었어요.
희망은 원대하거나 큰 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곧 희망이 아닐까요. ‘희망찬 내일’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하잖아요. 매일매일 알차게 살고 작은 소망을 하나씩 이뤄보는 거죠. 작은 성취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큰 희망이 될 테니까요. 저 또한 혼자 양말 신기, 옷 지퍼 올리기 등 소망을 하나씩 이루면서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새해에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하는데, 이전보다 근육이 더 붙었으면 좋겠어요. 또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배드민턴 종목 출전도 앞두고 있는데요. 이전보다 더 높은 성과를 이루고자 합니다. 아울러, 하반기 책 출간을 통해 다양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정해진 목표와 희망이 있다면 꼭 행동으로 옮기길 바랍니다. 실천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근사한 목표로 머물기 때문이죠. 그리고 희망이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인지, 혹여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닌지 고민해 보는 과정도 중요한 것 같아요. 2025년, 여러분의 희망을 꼭 실현해 보길 바랍니다. 결과는 상관없습니다.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멋지고 의미 깊은 한 해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