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제법 따뜻해진 봄날, 추위에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누리고 싶다면 충무로 골목길 산책에 나서 보자.
골목 깊숙이 들어갈 때마다 펼쳐지는 예술의 향연에 당신의 봄날이 더욱 풍요로워질 테니까.
글. 김민영
사진. 정우철
서울의 충무로는 우리나라 영화의 메카로 잘 알려진 동네다. 많은 영화, 예술인이 충무로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불과 지난해까지도 운영되던 대한극장, 충무로영상센터 등 영화 관련된 장소들이 이곳이 예술의 동네였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지금은 그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충무로는 여전히 우리에게 ‘예술의 성지’로 기억되고 있다. 충무로 필동에 자리한 ‘스트리트 뮤지엄’은 ‘예술의 성지’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법한 골목길이다. ‘뮤지엄’이라는 명칭이 붙은 탓에 어느 한 편에 마련된 박물관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필동을 시작으로 남산골한옥마을 일대를 문화 공간으로 조성한 말 그대로 ‘스트리트 뮤지엄’이다. 오며 가며 쉽게 접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필동 문화예술 거리 예술통이라고도 불린다.
이 거리는 충무로에서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광고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한 대표의 아이디어로 꾸려졌다. 충무로에 영화, 광고, 사진, 출판 등 문화예술의 기반이 되는 산업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대표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 남은 문화예술의 흔적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마을 주민들이 오가며 볼 수 있는 미술관을 떠올렸고,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거나 짐들이 쌓인 골목 곳곳의 자투리땅을 활용해 미술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간을 만드느라 생긴 소음으로 인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젊은 작가, 문학가 등 여러 예술가가 모여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넣자, 주민들의 반응도 점차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예술가들, 주민들의 손길이 모이고 모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골목길 미술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스트리트 뮤지엄’은 충무로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예술통’ 안내 표지판에서부터 시작하거나, 남산골한옥마을 후문에서부터 시작하는 방법이 있지만 접근성을 고려한다면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더 편할 듯하다.
스트리트 뮤지엄 산책에 나서기 전에 ‘컨테이너, 모퉁이, 사변삼각, 둥지, ㅂㅂㅂㅂ벽, 우물, 이음, 골목길’ 총 8개의 전시 공간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아두면 좋다. 골목 골목을 걷다 보면 모르고 스쳐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관람할 수 있도록 거리 중간마다 스탬프를 비치해 뒀으니,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으로 이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산책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면, 컨테이너에 전시된 독특한 그림을 시작으로 벽화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자. 귀여운 그림을 보는 사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모퉁이에는 원래 강렬한 빨간색이 인상적인 강형구 작가의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작가의 설치 미술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조금 험상궂은 사람의 조형물이 맞이하는 둥지에는 그라피티 작품이, ㅂㅂㅂㅂ벽에는 나무 밑동으로 만든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텅 빈 몇몇 공간을 보니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래도 ㅂㅂㅂㅂ벽을 지나 남산골한옥마을 안에 자리한 우물, 이음, 골목길까지 찾는 재미를 놓치지 말 것. 숨이 찰 때쯤 한옥마을 안에 이질감 없이 녹아든 공간들이 눈에 보이면 반가운 마음이 절로 들 것이다. 스트리트 뮤지엄 산책은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골목에 새 숨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과 작가들이 들인 시간의 깊이가 느껴져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보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다. 형형색색의 꽃이 피는 봄의 절정에는 이 일대가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빌 텐데, 이토록 의미 있는 공간들이 더 다양한 작가의 전시로 빼곡히 채워져 오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