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을 단절하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자전거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온전히 사람의 두 발로 이동하는 자전거는 운동효과는 물론 타는 재미까지 더해져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자전거 인구가 많아질수록 꼭 필요한 것이 자전거를 수리해 주는 수리공의 존재일 텐데요, 장애인기능올림픽 자전거 조립 부문 은상 수상자인 문규배 씨가 그렇습니다.
[글. 노혜진 사진. 김정호]
돈을 벌기 위해 달리기만 했던 청년 시절
문규배 씨는 전북 완주의 대둔산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취업을 결심했다고 하는데요, 그 때문에 전주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취업 운이 좀 따랐는지 학교 졸업하고 난 후에 서울에 바로 취업이 됐어요. 그때부터 다른 건 안 보고 열심히 돈을 벌었죠. 그렇게 고생을 해서 현금으로 1억 원 가까이를 벌어 놓고 나니 만족보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문규배 씨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수익률이 좋다는 투자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잘 되나 싶었지만 결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큰 손해를 지고 전주로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손에 남은 건 없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대리운전 일을 시작했는데,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던 형에게서 연락이 왔죠. 자신의 밑으로 들어와서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싶었던 문규배 씨는 형의 제안에 승낙을 하고 자전거 대리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자전거
"자전거는 정말 장점이 많은 기구입니다. 전신 운동을 하기 때문에 체력 단련에 아주 좋아요. 연료를 쓰지 않으니 친환경적이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요즘 같은 날씨에는 아주 제격이죠." 문규배 씨는 처음으로 만난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형의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자전거를 알게 된 그는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해요. "3년 정도 일하고 나니 내 가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배워서 내 기술을 갖고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2년을 더 일했어요. 그리고 당시 모았던 돈 600만 원으로 창업을 하게 됐죠." 창업에 필요한 돈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게를 알아보러 다니는데도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어머니와 형,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만의 가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해요. "창업을 하고 난 후에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됐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었고 단골도 생겼죠. 이제야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손님의 권유로 참가하게 된 장애인기능경기대회
문규배 씨는 처음에 대회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가게는 잘 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던 거죠. 대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어느 날 저에게 손님이 찾아왔어요. 저보다 장애등급이 더 높은 지체장애인 분이셨는데, 지방대회를 나가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처음에는 거절을 했죠. 그런데 지속적으로 찾아와서 말을 하는 거예요. 대회에 나가 보면 좋겠다고." 손님의 간곡한 권유에 문규배 씨는 자신의 실력도 확인해 볼 겸 지방대회 참여를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전국대회 출전권도 획득하게 되는데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해요. "전국대회라는 큰 대회 때문에 부담이 생겼어요. 이대로 그냥 나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북에 자전거 조립에서 세계 1위를 한 장인이 계시는데, 그분께 무작정 가서 저 좀 트레이닝시켜 달라고 했어요. 다행히 그분이 흔쾌히 절 받아주셔서 한 달 정도 트레이닝을 받았죠." 전국대회까지 무난하게 통과한 문규배 씨는 드디어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됩니다. 자신이 있었다고 해요. 훈련 과정도 좋았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높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열린 장애인기능올림픽의 자전거 조립 분야는 여성용 도시형 자전거를 조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경기를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자전거 모델은 당일 공개가 되었는데요, 프랑스 모델이었고 제가 지금까지 연습한 모델과는 달랐어요.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1시간 가까이를 무엇을 해야 할지 헤매기만 했어요." 4시간 30분의 경기시간 중 1시간을 허비한 문규배 씨는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세수를 하고 온 그는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며 마음을 다잡고 조립에 열중했다고 해요. "마음을 굳게 먹고 경기에 임하니 그때부터 잘 됐어요. 결국 저는 시간 내에 완성을 하지 못했는데, 주변에도 완성을 한 분이 안 보여서 조금은 안심을 했죠." 결과는 은메달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경기였기에 은메달이라는 결과가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고 해요.
자전거 수리의 명장이 될 때까지
"자전거 수리는요,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자전거 수리공을 아픈 자전거를 고쳐 주는 의사에 비유하는데요, 내 손으로 수리한 자전거가 소비자에게 기쁨이 된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문규배 씨는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전거 수리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함에도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는데요, 그 때문에 방과후 교육이나 평생교육원 교육 등 자전거 수리에 관련된 강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전거 수리 기술이 보급이 잘 안 돼요. 배우려고 해도 배울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내가 가르치는 것으로 인해 경쟁자가 양성된다는 말들도 많이 하는데요, 자전거 인구를 더 많이 늘리려면 결국은 내 자전거를 살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문규배 씨는 선진국처럼 자전거 인구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동호회 10명 중 2~3명은 자전거 수리가 가능할 정도로 수리 기술이 보급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말하기도 했는데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기구처럼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우연히 만난 자전거 덕분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믿어요. 자전거는 저에게 행운과 같은 존재인 거죠. 14평의 매장에서 시작했던 제가 이제 40평의 매장을 갖게 되었고, 국제대회에서 상도 탔으니 자전거가 저에게 가져다 준 것이 많네요." 아직까지는 부족하지만 좀 더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자전거 수리의 명장도 될 수 있지 않겠냐며 웃는 문규배 씨. 기능올림픽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지만 누군가가 자신에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지원할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제 기술로 남들을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울 거예요. 어려움을 겪고 나서 돌이켜 보니 좋은 일을 하면 결국 저에게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현재 성당을 다니면서 꾸준히 봉사도 하고 있는 문규배 씨는 지금까지처럼 계속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작은 곳에서 보람을 느끼고 베풀면서 살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넉넉한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