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만능
사막에 송유관이 놓입니다. 용접으로 기다란 관을 연결해 놓았는데, 용접 부위가 허술해서 원유가 유출됩니다. 송유관이 얇은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일은 단지 상상이나 가정으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송유관이나 가스관은 물론 조선, 건축 등 큰 공사에서 조그마한 문제 때문에 공정 전체가 중지될 수도 있는데요, 바로 이런 일을 막아주는 것이 비파괴검사입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서칠수 대표가 있는 케이엔디이㈜ 역시 비파괴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이죠.
[글. 노혜진 사진. 윤상영]
케이엔디이㈜는 2005년 설립되어 올해 12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회사입니다. 비파괴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로 검사 및 관련 기술 자문, 교육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유명 비파괴검사 전문가를 영입해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는데요, 2006년에는 러시아 사할린 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베트남 하노이 지사 설립을 하고 올해 9월에는 아프리카 가나 진출과 더불어 방글라데시, 투르크메니스탄 등 다양한 국가로 진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기도 하죠. 연구 개발에도 힘을 써서 2007년에는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풍력타워용 타워플랜지 비파괴검사장치, 비파괴검사를 위한 트래킹 장치 등 4건의 특허를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 Q
- 먼저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비파괴검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말씀해 주세요.
- A
- 저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이 시골이었고 주변 여건도 인문계를 진학할 상황이 아니어서 대중금속공업고등학교(이하 대중금속공고)에 입학을 했죠. 그곳은 금속분야 특수목적 고등학교로 저는 재료실험 관련 학과를 다녔습니다. 그 학과에서는 금속의 경도나 인장, 충격 등을 시험하는 곳이었는데, 금속을 때리고 부수면서 성질과 특성을 알아보는 곳이었죠. 하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이 취업 자리를 알아보다 보니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재료실험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어요. 실험실 수요가 거의 없었거든요. 담임선생님이 생각한게 비파괴검사였죠. 비파괴검사는 이미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 도입이 되긴 했지만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제대로 시킨 것은 대중금속공고가 처음이었습니다. 비파괴검사를 가르쳐서 산업현장에 보내 보니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어요. 한 과의 60% 이상이 비파괴검사 회사에 취업을 했을 정도로요. 그런 흐름에 맞춰서 저도 자연스럽게 비파괴검사를 익히게 됐죠.
- Q
- 비파괴검사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
- A
- 쉽게 예를 들어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겠지요. 뼈가 부러졌는지 X-ray를 찍어 보고 다른 문제는 없는지 CT나 MRI도 찍어 볼 겁니다. 더 정확히 문제를 찾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할 수도 있죠. 비파괴검사는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물론 인체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니 초음파의 주파수는 다르고 방사선 농도가 더 높기는 하지만 원리는 같아요. 쉽게 말해 대상 물품을 부수거나 해체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이상이나 결함은 없는지 검사를 하는 것입니다. 검사 방식으로는 방사선, 초음파, 자기탐상검사(자력검사)를 씁니다.
- Q
- 그렇다면 비파괴검사는 어디에 쓰일 수 있나요.
- A
- 비파괴검사의 적용 분야는 정말 많습니다. 금속분야는 거의 100% 쓰인다고 생각하면 될텐데요, 조선 쪽의 용접 검사, 우주 항공의 부품 검사, 엔진, 송유관, 가스관, 교량, 반도체, 플랜드 등의 산업분야는 물론 문화재 등에도 비파괴검사가 쓰입니다. 오래된 석탑이나 도자기의 내부에 뭐가 있는지 혹은 오래된 종의 균열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을 알 수 있죠. 비파괴검사로 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 Q
- 대표님이 생각하는 비파괴검사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 A
-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물건의 품질을 최종으로 확인한다는 자부심이겠죠. 제품을 완성하거나 공사가 끝났을 때 마지막으로 비파괴검사를 함으로써 제품의 품질을 보증합니다. 그리고 항공기, 탱크, 용접 등 다양한 현장에 쓰이고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분야가 무궁무진합니다. 어렵기는 하지만 기술을 한 번 배워 두면 쓸 곳이 아주 많아요. 이런 미래의 가능성도 비파괴검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 Q
- 케이엔디이㈜는 어떻게 창업하시게 된 건가요.
- A
- 대중금속공고를 졸업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비파괴검사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고 방위산업체로 들어가 5년 7개월 동안 비파괴검사 업무를 담당했죠. 그 기간 동안 방사선투과기능사, 자기탐상기능사, 침투탐상기능사, 초음파검사기능사 1, 2급 등 5개 국가기술자격도 취득했어요. 그러다가 1994년에 케이엔디티엔아이에서 일을 시작해서 지사장으로 근무했습니다. 10년 넘게 근무를 하며 실력도 인정받았어요. 비파괴검사 시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고 난 후에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Q
- 창업 후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A
- 창업하고 몇 년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기존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지고 있던 거래처의 약 40% 정도를 잃었거든요. 그래도 2006년에는 러시아 사할린 법인을 설립하고 2007년에는 8곳 출장소 개업과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덕분에 설립 8년 만에 매출액 2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었죠. 또한 2015년 고용노동부 선정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 2012년 중소기업청 선정 '취업하고 싶은 500대 강소기업'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 Q
- 대표님이 보시는 현재의 비파괴검사 시장은 어떤가요.
- A
- 비파괴검사 시장이 예전보다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제가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인 3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해 보면 검사 비용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내려갔습니다. 물가는 그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상승했는데도요. 이러다 보니 기업들은 박리다매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죠. 현재 부도가 나는 비파괴검사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국내는 좁기 때문에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어요. 우리 회사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입니다.
- Q
- 해외 진출 계획은 어떻게 진행 중이신가요.
- A
- 우리나라의 비파괴검사 기술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집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중동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또한 부지런한 한국인의 습성은 공기 단축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죠. 예전에 일본에 있는 비파괴검사 회사에서 잠시근무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정말 새로운 기술을 많이 배웠고 전문가도 한 분 알게 되었는데, 그 일본인 전문가 분을 우리 회사 고문으로 모셔서 해외시장 개척을 모색했죠. 현재 아프리카 가나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영국, 인도네시아, 조지아 같은 곳 역시 개척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 Q
- 대표님이 가지고 있는 꿈은 어떻게 되시나요.
- A
- 해외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해 보지 못한 선진 기술들이 많아요. 우리보다 선진화되어 있는 업체의 기술을 우리에게 들여와서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계속 고생한 우리 직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싶어요. 저는 항상 우리 회사를 과수원에 비유하는데요, 저는 토양을 다지고 열매를 가꾸는 것을 도와주기만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열매를 따서 수확하는 것은 직원들 각자의 몫이죠. 많이, 튼실하게 가꾸어 좋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