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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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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시간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우수한 기술력으로 전기·통신·소방 설계회사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곳이 있습니다. ㈜세종기술단이라는 곳인데요. 그 중심에 ‘기술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55번째 ‘이달의 기능 한국인’으로 선정된 ㈜세종기술단의 조욱제 대표입니다.

글 황정은 | 사진 이용기

  • “전 지금도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데요?”

    지난 4월, 155번째 ‘이달의 기능 한국인’을 만나기 위해 조욱제 대표를 찾았습니다. 30년 째 소방·전기 설계 및 감리 분야의 한길을 걸어온 전문기술인이기에 다소 딱딱한 이미지를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탓일까요. 첫 만남부터 활짝 미소를 지으며 취재진을 반긴 조욱제 대표는 취재진의 머릿속 이미지와 달리 밝고 따뜻하며 또 엉뚱한 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아 지구와 우주, 그리고 은하계에 대한 왕성한 궁금증을 안고 살았다는 그는 당시에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었고 지금도 여전히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대화의 운을 뗐습니다.

    “어린 시절에 엉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우주에 관련된 책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지금도 SF 영화를 보면 한눈을 팔지 못해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것에 늘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만화도 좋아한 것 같고요. 어릴 적 제가 정말 만화광이었거든요.”

    만화를 도대체 얼마나 좋아했는지 물으니 “장래희망이 만화가가 될 정도” 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평생 동안 만화를 그리고, 또 스스로 그린 만화 속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며 살고 싶었다는 조욱제 대표는 “비록 만화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당시에 갈고 닦은 손재주를 설계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셨어요. 당시만 해도 사회적 분위기가 ‘기술 있는 한국인’을 강조하고 있었죠. 학교에 탑을 만들어 이 문구를 적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아버지께서 당시 저에게 이 분야로 가면 어떻겠냐고 살포시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만화 그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까 그 손재주로 이 분야에서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하셨나봐요.”


17세의 조욱제, 본격적인 기능인의 길로

고민 끝에 진주공고 전기과에 진학한 조욱제 대표는 모범생으로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무난한 학교생활 후 전기기능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이후 취업까지 바로 성공했지만 예상 외로 그는 회사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취직한 곳이 전기공사업체였어요. 현장에서 공사를 해야 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제가 일을 하면서 가만히 보니 다른 동기들이 저보다 일을 훨씬 잘하더라고요. 제 결과물을 보는 게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 때 한 상사가 ‘욱제야, 넌 이 일을 계속 하는 것 보다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대학에 가는 게 어떨까?’ 라고 권유해 주셨어요. 마침 저도 회사일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갖고 있던 차였기에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갈망도 컸기에 당시 스물한 살의 조욱제 대표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기술자로서도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전기기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당시의 삶을 회상하며 아련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해요. 당시에 아버지의 권유가 없었다면, 그래서 공고에 진학하지 못했다면, 또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했을까요? 한 때의 결정이 삶을 좋은 길로 인도해 준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전 이 일을 하는 지금의 저와 제 현재에 참 감사하거든요.”



  • 위기를 기회로 삼는 마음

    대학 졸업과 군 제대 후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조욱제 대표는 6촌 당숙의 추천으로 설비설계사무소에 입사하면서 건축물의 전기·통신·소방의 설계 업무를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조욱제 대표에 따르면 당시 전기·통신·소방 설계 업무에 대한 인식은 매주 낮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 월급이 밀리는 날도 잦았지요.

    “설계 라고 하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건축설계’를 떠올립니다. 현재도 전기·통신·소방 설계 업무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하도급을 받는 구조에요. 그러다보니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회사를 30년 이상 운영해 왔지만 사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돌아보면 웃음만 나올 뿐이에요. 전기·통신·소방 설계가 건물을 지을 때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오랜 시간 힘들었습니다. 최근 들어 소방설계법이 일부 독립돼 그나마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상황 속에 있는 것은 맞아요.”

    회사를 운영하는 시간은 늘 위기 속에 있었지만, 위기 속에는 늘 도약의 기회가 숨어있기 마련입니다. 조욱제 대표가 회사를 설립했던 시간들 역시 그랬습니다.

    “1987년 어느 날, 이전에 다니던 설비설계 사무소의 동료와 선배로부터 전기설계팀이 해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참에 회사를 만들어 대표를 맡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죠. 며칠 고민 끝에 ‘그래. 어차피 창립할 거, 지금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굳혔어요.”

    ㈜세종기술단이 본격적으로 출몰하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해

‘세종기술단’의 뜻을 묻자 조 대표는 “세종대왕의 기술적 능력과 어진 인품을 담고 싶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또한 ‘엔지니어(engineer)’를 한자로 풀면 ‘기술단’ 이 된다며 두 단어를 합성해 ‘세종기술단’으로 사명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얼마 안 지나서 IMF가 찾아왔어요. 어려움의 연속이었죠. 헌데 사실 제가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시간이 바로 IMF 에요. 물론 절망에 빠진 기분이긴 했어요. 아무것도 남는 건 없고 빚만 쌓여갔으니까요. 하지만 낙천적 성격 덕분일까요. 마음 한 구석에 막연히 ‘잘 될 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내후년이 더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나아질 미래를 맞기 위해 경영 태도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조욱제 대표는 IMF 당시 모두가 경영에 소극적 태도를 보일 때 적극적 태도로 변모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고 일의 경중을 가린 후 중요한 일에 매진하기로 한 것이죠.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켰습니다.

“덕분에 주위에 좋은 사람이 모였고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엇을 하든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결국 이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것이니까요. 마음이 가야 함께 일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인간적 믿음이 갖고 오는 결과를 믿고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했어요.”

사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는 조욱제 대표. 그는 앞으로 후배 양성을 위해 더욱 힘쓰는 선배 기술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조 대표는 젊은 친구들에게 ‘긍정적으로 사고할 것’ 그리고 ‘사람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아무것도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 꾸준한 노력은 기본이라는 말과 함께요.
앞으로 ㈜세종기술단의 직원들과 함께 비전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조욱제 대표는 더욱 겸손한 자세로 하루하루를 가치있게 지어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가치관 덕분일까요. ㈜세종기술단은 오늘도 겸손한 기술의 발전을 한 발 한 발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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