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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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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시간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성기는 찾아옵니다. 그리고 전성기의 유효기간은 스스로가 정할 뿐, 타인에 의해 정해지지 않습니다. 기능한국인으로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하기엔 이르다는 황운기 대표의 말입니다.

글 최선주 | 사진 김현희

  • 재봉틀 고장이 반가웠던 꼬맹이

    “운기야, 재봉틀 고장 났다~” 소리에 곧장 달려가 뜯어보던 아이. 황운기 대표가 기억하는 어릴 적 단상입니다. 달리 배운 것도 아닌데 고장 난 기계를 용케도 잘 고치던 아이는, 슬롯다이 코터용 노즐(코팅액을 균일하게 분사시키는 코팅 기계용 노즐) 국산화로 업계에 반향을 일으킨 ㈜효광의 주인입니다.

    “슬롯다이 코터용 노즐은 LCD, 2차 전지 등을 코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부품인데요. 어릴 적에는 지금의 제 모습을 상상 조차 못했어요. 학교도 겨우 겨우 다녔거든요.”

    전라남도 순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재학 시절 내내, 서무실에 불려가길 일쑤로 했습니다. 단 한 번도 등록금을 제때 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겨우 다닌 학업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질리 없었습니다.

    “집에 빚이 있었어요. 제 학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됐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영 체질에 안 맞더라고요. 형한테 도와달라고 했어요. 직업훈련학교에만 보내달라고. 나중에 커서 갚겠다고요.”

    전남기계공고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황운기 대표는 직업훈련학교 기계과에 들어가고 나서야 ‘제 옷을 입은 듯’ 편안했다고 회상합니다. 기계로 제품을 깎고 가공하는 일이라면 늘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심장에선 자꾸만 ‘뜨거운 것’이 목젖까지 올랐습니다.


‘버거웠으나 버겁지 않았던’ 주경야독의 시절

배움엔 끝이 없다던데 직업훈련학교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1년씩이나’ 되는 교육과정이 그에게는 ‘겨우 1년’ 정도로 여겨진 건데요. 직업훈련학교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그는 ‘취업을 하되, 학업도 병행하자’라는 확고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때 조건을 하나 걸었어요. 월급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 학교만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요. 당시 직장을 다니면서 학교도 다닐 수 있게 한 제도가 있었는데, 이걸 회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병행이 어려웠거든요. 다행히 두 번째로 들어간 기계가공회사에서 허락을 해줬습니다. 그길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영등포공고 산업재 특별학급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일을 마친 후 이어지는 학업은 고됐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버거웠을 뿐, 심리적으론 오히려 충만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가벼웠으니까요. 고등학교 졸업 후 유한공전(현 유한대학교) 금형설계과에 입학하며 내공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황운기 대표에게 그간의 시간들은 ‘고생’ 보다는 ‘보람’에 더 가까워보였습니다.



  • “문래동 7평짜리 작은 회사, ㈜효광

    “여기서 일해 보지 않을래?”

    문래동에서 성형연삭 공장을 운영하던 삼촌의 제의를 그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기계가공 일이라면 늘 자신 있었고, 친동생이 이미 삼촌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혈연단신으로 올라온 서울생활에 따뜻한 불씨를 지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철야를 거듭해도 회사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것이었죠. 회사 부채는 갈수록 쌓여만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였나 싶어요(웃음). 그런데 잘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빚을 끌어안고 삼촌이 운영하던 회사를 인수했죠. 그런데 인생이란 참 예측이 불가해요. 회사를 인수받자마자 IMF가 터졌으니까 말이에요.”

    굵직한 대기업도 맥없이 무릎을 꿇던 시절, 부채가 산더미인 작은 회사가 망하는 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이상한 건, 빚더미에 앉은 작은 회사 ‘효광’이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약속은 목숨이다, 라는 신조를 반드시 지켜냈어요. 힘든 때일수록 납기일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장 처음으로 한 게 욕심을 내지 않은 거였어요. 할 수 있는 만큼만 주문을 받고, 불량 없이 납기일을 맞췄죠. 힘든 시기였지만, 일 하는 게 재밌었어요.”

    약속을 목숨처럼 여기는 그의 신조는 효광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20억 원 적자라는 큰 시련이 찾아왔을 때도, 그의 신조를 앞서 확인했던 거래처 사람들은 그의 곁을 든든히 지켜줬습니다.




한다면 한다! 끝나지 않은 소년의 꿈

스크라이버 관련 특허(LCD 액정을 자르는 장치)는 물론 그간 해외에 의존해왔던 ‘슬롯다이 코터용 노즐’ 국산화에도 성공한 황운기 대표. 그의 신념이 만든 지금의 ㈜효광은 이제 전 세계가 알아보는 강소기업입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낸 것보다 아직 해내지 못한 게 더 많아요. 주력분야인 LCD와 반도체 분야를 넘어 이제는 정밀가공 기술이 필요한 첨단분야로 영역을 넓혀보려고 합니다. ‘슬롯다이 코터용 노즐’ 국산화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시대에서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을 멈추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황운기 대표는, 그래서 국내 최고의 기술장으로 인정하는 ‘기능한국인’ 타이틀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한정짓지 않는 한 전성기에 유효기간은 없다며, 여전히 눈을 밝히며 꿈을 이야기하는 중년의 남자. 밤늦게까지 이어졌던 어린 소년의 학구열은 ㈜효광 현장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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