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유망직종
우리나라는 지하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원의 구애를 받지 않는 에너지 확보가 필요합니다. 또한 점점 심해지는 미세 먼지 등의 환경 문제로 인해 친환경 에너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로 꼽히지만 더욱 안전성 있는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핵융합은 원자력의 주요 기술인 핵분열과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안전하고 첨단 기술이 더욱 많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미래의 꿈을 실천하는 기술이라고 불리는 핵융합,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융합로를 연구하는 개발자를 만나 보았습니다.
[글 노혜진 사진 윤상영]
지구에 만드는 작은 태양, 핵융합 장치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태양의 무한한 에너지의 근원은 핵융합 반응 때문인데요, 핵융합이란 간단하게 말해 수소가 뭉쳐서 헬륨을 만들어내면서 그 과정에서 수소의 질량과 헬륨 질량의 차이만큼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닷물 1L에 존재하는 0.03g의 중수소로 서울과 부산을 3번 왕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죠. 핵융합 장치는 이러한 태양의 핵융합 반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구에 인공 태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핵융합 장치를 가리켜 '인공태양'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하지만 이 핵융합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1억 도 이상의 초고온이 필요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핵융합 기술을 가리켜 '꿈의 기술'이라고도 부릅니다. 꿈이라고 하면 잡힐 수 없는 허상을 좇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미 서방 선진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핵융합 연구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거든요. 1950년대 초반, 구소련의 물리학자인 사하로프와 탐이 생각해 낸 핵융합 연구장치는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핵융합 장치의 기본이 되었는데요, 도넛 모양의 이 그릇을 가리켜 트로이드 자기장 공간이라는 뜻을 담은 러시아어 합성어인 '토카막'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핵융합에 매료되어 연구소에 발을 내딛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핵융합을 연구하는 시설인 국가핵융합연구소의 부센터장인 오영국 연구원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핵융합에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전공 역시 원자핵공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죠. "제가 학교에 갔을 때 이미 한국 최초의 토카막이 교수님과 학교 선배들의 손으로 제작되어 학교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직접 실험장치를 손으로 만들고 체험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대학 3학년 때부터 대학원 실험실을 찾아가서 선배들의 연구에 같이 참여하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연구책임자가 현재 7개국(유럽연합을 한 나라로 치기 때문에 실질 참여국은 35개국)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국제기구 사무차장이자 전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인 이경수 박사님이라고 해요. 그 시점에 핵융합연구에 참여하였던 많은 연구진들이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를 건설하는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실험을 좋아해서 대학원도 실험실로 갔어요. 그렇게 박사 과정을 진행하는 도중에 대전에서 핵융합연구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1993년도에 핵융합연구소의 모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핵융합연구소에 발을 디딘 오영국 연구원이 진행했던 일은 KSTAR의 주요 부품인 초전도 자석의 성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차츰 부품 연구를 하다가 KSTAR 전체를 아우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핵융합을 책임질 KSTAR
"KSTAR는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설계·제작한 토카막형 핵융합 연구장치입니다. 2007년에 완공되었는데요, 현존하는 핵융합장치 중에 가장 발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예전부터 핵융합 장치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1979년 서울대학교에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토카막 SNUT-79나, KAIST-토카막처럼 미국 텍사스대학의 핵융합 연구센터에서 개발한 토카막 장치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설치한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핵융합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의 연구 경험을 보잘것없는 수준으로 평가했습니다. "1995년에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중형 초전도 토카막을 설치하겠다고 말했을 때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특히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나이오븀-주석 합금(Nb, Sn) 재료를 사용해 건설하겠다고 했을 때는 놀라움을 넘어 우려까지 표시했죠." 국내에서도 거액의 국가 예산을 불확실한 계획에 투자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핵융합 분야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의 중공업 기술력은 초전도 자석에 필요한 가공 및 열처리 기술, 대형 진공용기의 설계 및 정밀 조립 기술에 충분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고 해요. "12년 만에 초전도 토카막인 KSTAR를 완성할 수 있었죠. 2007년 완공되었고, 2008년 최초의 시험가동으로 플라즈마를 발생시켰는데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공된 KSTAR는 세계적인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는데요. 보통 핵융합 플라즈마의 경우 가동이 되고 난 후 지속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존에는 5~10초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KSTAR는 최근 70초까지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해요. 이는 세계 최장 기록인데요, 종전의 '초' 기준에서 '분' 단위로 넘어가는 기록을 KSTAR가 세운 것입니다. 앞으로 KSTAR를 이용해 핵융합 플라즈마의 지속 시간을 5분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도전이 필요한 분야
오영국 연구원의 말에 의하면 최근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실력 상승이 눈부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KSTAR 장치의 건설에 참여했던 많은 연구자들과 국내 산업체들이 ITER 건설에 있어서 세계적인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요. "저희는 KSTAR 장치를 미래 핵융합발전소를 개발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기술을 확보하는데 핵심적인 장치로 발전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해외 연구자들도 KSTAR를 이용한 공동 연구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가 인정해 주는 KSTAR이지만 가장 아쉬운 것은 역시 연구인력이라고 합니다. KSTAR에서는 매년 2,000 번의 실험이 진행되는데요, 이를 분석하고 연구할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해요. "해외에는 KSTAR 정도의 장치에 400명 이상의 인력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STAR는 100여 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어요. 유능한 연구자의 참여가 참으로 절실한 상황입니다." 오영국 연구원은 대학에서 역량 있고 도전적인 젊은 피가 많이 배출되어 핵융합연구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는데요, 제도적으로 보다 많은 연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뒷받침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어요. "KSTAR를 운영해 가면서 보람 있던 점은 정말 많아요. 특히 얼마 전까지는 해외에서 나온 결과를 재확인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작년부터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작년 연말부터 KSTAR가 잠재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는데요, 드디어 빛을 보는 것 같아서 굉장히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영국 연구원은 핵융합이라는 분야의 가장 큰 매력은 기초학문과 첨단학문의 공조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플라즈마 해석을 위한 물리학과 핵융합이라는 기초학문과 장치를 가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첨단 과학인 컴퓨터, 재료학 같은 학문들이 힘을 합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핵융합은 각 분야의 인재들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장치를 가동할 때 플라즈마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기술들, 가상으로 핵융합을 돌려보는 장치, 원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기술 등이 필요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가 있어야 합니다." 오영국 연구원은 핵분야 물리학 등 관련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참여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꿈의 기술로만 여겨지고 있는 핵융합 발전. 지금까지처럼 계속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오영국 연구원이 꿈꾸는 에너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미래도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요. 핵융합로 연구개발자들은 현재가 아닌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에너지를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더욱 발전해 나갈 그들의 미래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