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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인문학

[자료제공. 국민권익위원회]

일찍이 외국어의 필요성을 깨닫다

이원익은 과거에 급제하자마자 명나라어를 익히는데 전력을 다했다. 당시 사대부들은 외국어 공부보다는 과거 시험에 필요한 경서와 시문의 연마에 더 주력했으나 이원익은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로 볼 때 명나라어가 꼭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조선은 명나라에 1년에 여섯 차례 정기적으로 사절을 보냈는데, 사절단에는 관료 외에도 통역을 위한 역관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역관들의 명나라어 실력도 그리 좋지는 않아 안부 인사를 묻는 수준이라 피차 뜻이 잘 통하지 못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당시 이원익은 평안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열심히 익힌 명나라어 실력을 바탕으로 명나라 장수와 관리를 직접 접대했다. 조선의 사정을 이원익이 유창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 일을 하기가 훨씬 수월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급변하는 전시에 통역을 맡은 역관이 실력이 모자라 상대국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원익이 평소에 갈고닦았던 명나라어 실력으로 명나라 장수들을 접대하는 제반 일들을 무사히 처리하였으니, 국가의 위기 상황에 중요한 역할을 해낸 것이다. 이원익의 명나라어 실력에 관한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이원익이 서장관(조선시대 중국에 보내던 사신 중 정관(正官)으로 전문적인 외교실무를 담당)으로 명나라에 가서 사신과 예부관원이 만날 때에 명나라 측의 통역관이 말을 바꾸어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이원익은 이 상황을 눈치챘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을 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산해관(山海關 중국 하북성 북동단에 위치한 교통, 군사상의 요지)에서 명나라 유학자를 만나 경사를 토론하게 되었는데, 이원익의 문답이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본 통역관이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이원익에게 용서를 구했다.

40년 재상 노릇에 조석거리도 변변치 않아

이원익은 일생을 검소하게 산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가 들어 당시 임금인 인조에게 사임을 청했는데, 인조가 술을 하사하여 전송하고 "평생의 검소함은 경의를 표할 만하다."라며 이원익의 집에 승지를 보냈다. 승지가 인조의 명을 받들어 이불과 요를 전해 주고 돌아와 고하기를 "초가집이 쓸쓸하였고 비바람도 못 가리는 형편이었습니다."라고 전하자 인조가 정승이 된 지 40년인데 초가삼간뿐이냐고 놀라며 정당을 지어서 하사했다. 선조, 광해군, 인조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관료인 그가 얼마나 청렴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심지어 퇴직한 후에는 조석거리도 마땅치 않아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사대부로서 드물게 명나라어를 구사할 정도로 능력이 있었고 40년이나 정승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변변한 집과 먹을 것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생을 검소하게 살면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나라에 보탬이 된 그는 바람직한 청백리의 전형으로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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