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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을 단절하다

웃는 미소가 맑은 사람이 있습니다. 청각장애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세상과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죠. 그림을 그리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시각디자인 분야 금메달 수상자 김미진 씨의 이야기입니다.
[글. 노혜진 사진. 윤상영]

어릴 때부터 싹텄던 소질

김미진 씨의 그림 사랑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부모님도 김미진 씨의 그림 실력을 알아보고 미술 학원에 보내 주셨고, '손재주가 있다.'는 선생님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해요. 고등학교 때 회화 전공으로 진로를 정했는데요, 대학교 전공을 정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시기, 어머니가 선생님과 상담하고 오시더니 '시각디자인'을 전공으로 추천했다고 합니다. 시각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았을 때라 그대로 따랐는데, 그게 김미진 씨의 평생 직업이 되었다고 하네요.

순탄치 않았던 직장생활

대학교를 졸업하고부터 시각디자인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김미진 씨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니는 직장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서 1년 동안 세 군데의 직장을 옮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을 하면서 특히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클라이언트에게 보내준 시안에 대한 수정 요청은 보통 전화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수시로 들어오는 수정 요청을 김미진 씨가 바로 대응할 수 없어서 직장 동료가 대신 받아서 전달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그럴 때마다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회사의 사정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된 김미진 씨는 재취업이 되지 않아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요. 취업을 위해 구직 사이트를 검색하던 김미진 씨의 눈에 청년 인턴이 눈에 띈 것은 그때였다고 합니다. 마침 살고 있던 대전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청년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던 거죠. 연구원 홍보팀에서 9개월간 일을 한 김미진 씨는 계약직으로 1년을 더 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원에서 1년 9개월 일을 한 것은 김미진 씨에게 조금의 숨을 틔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해요. 하지만 계약 만료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는 없었고, 그 이후 1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인의 소개로 사회적기업인 리드릭 소속으로 대전 캠코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해요. 김미진 씨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합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서 꿋꿋하고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해 왔죠. 하지만 당시에 했던 일들은 모두 시각디자인과는 상관 없는 다른 일이었어요. 김미진 씨는 이대로 자신의 길이 결정되어도 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해요. 일을 손에서 놓았기 때문에 감은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씩 들었다고 합니다.

꿈을 찾아준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김미진 씨는 어찌 보면 운명처럼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때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김미진 씨는 시각디자인 일을 쉬고 다른 일을 오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디자인 감은 떨어지고 부족해지는 것을 느껴서 고민이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지방장애인 기능경기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디자인 서적을 참고해서 공부하고 그래픽 툴 연습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조금씩 감을 찾아갔던 김미진 씨는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금상 입상에 이어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출전이 결정되고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도위원의 꼼꼼한 지도를 받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 나갔다고 합니다. 김미진 씨의 노력을 하늘도 알아서인지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 때의 심정을 김미진 씨는 '꿈 같았다.'는 한 마디로 표현했는데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김미진 씨는 수상 당시에 마음이 천국에 붕 떠 있는 것 같았고 부모님께 좋은 소식을 들려 드릴 수 있는 것도 행복했다고 해요. 또 꼼꼼한 지도를 통해 실력을 향상시켜 주었던 지도위원의 얼굴도 계속 생각나면서 감사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고 해요. 그렇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김미진 씨는 시각디자인 분야의 일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뛰어든 시각디자인 분야

김미진 씨는 다시 시각디자인 분야에 도전하게 됩니다. 시각디자인이 자신의 적성과 특기에 가장 걸맞은 분야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인데요, 채용까지 이르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취업하여 관련 분야 업무를 처리할 때는 항상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현재는 서울에 있는 기업에 취직하여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면접을 위해 처음으로 서울에 와서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에 놀라 40분 동안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재 김미진 씨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 시각디자인뿐만 아니라 웹마스터와 같은 다른 종목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당장 도전하는 것이 아닌 꾸준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여 실력에 자신이 생기면 그때 참가할 예정이라고 수줍게 밝히기도 했어요.

김미진 씨는 20~30대 청년들의 꿈을 위해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도 해 주었는데요, 시각디자인 일을 할 때 상황도 어렵고 장애도 있어서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고 해요. 또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나는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 일이 천직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다시 시각디자인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꾸준히 자신의 길을 찾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생기니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핸디캡이 있는 자신도 상처를 받을지언정 열심히 세상과 마주 보고 있으니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김미진 씨는 이제 만 32세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호호백발 노인이 되면 그때 회화 쪽에도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내비쳤어요. 자신이 디자인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보람을 느끼고 제일 행복하다는 김미진 씨. 사람들이 좋게 봐 주는 것이 뿌듯하다는 그녀가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 보고 꿈을 위해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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