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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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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시간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고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기름때로 칠갑을 한 손이 부끄럽게 여겨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사는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배반하지 않는 땀의 현장 속에서 40년 인생을 모조리 건, 2월의 기능 한국인 썬프레인코 선철곤 대표를 만났습니다.
글 염세권 / 사진 이용기

  • “방앗간 원동기 조립, 그거 제가 할게요!”

    썬프레인코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가스스프링(자동차 엔진룸의 후드를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한 지지대)은 물론 댐퍼(장비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충격을 저감시켜 소음을 줄여주는 장치) 분야에서 국내외 2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허기술은 자동차는 물론 세탁기, 기차, 지진방지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도 활용되는데요, 썬프레인코의 제품들은 누적 수출액이 8,000만 불에 달할 정도로 15개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한 작은 회사가 세계로 나아가기까지는 선철곤 대표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땀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제가 1957년생인데요. 그 시절엔 다들 먹고 살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죠.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까요. 물론 학업과 일을 동시에 해야 했지만…”

    새마을운동으로 일상화된 부역 현장에서 노동값으로 밀가루를 얻어왔다는 중학생 시절의 선철곤 대표는 눈썰미와 손재주가 어찌나 좋은지 방앗간에서 원동기 조립을 돕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서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하는데요. 운명의 시작이었을까요. 김해농공고등학교에서 기계과를 처음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경쟁률이 7:1 이었어요. 당시엔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엄청 좋았죠.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지만, 크게 걱정은 안했던 것 같아요. 새벽이나 늦은 밤 시간을 이용해서 꾸준히 공부를 했었거든요.”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계과의 첫 입학생이 된 선철곤 대표는 피나는 노력으로 학비를 면제받은 것은 물론, 실업고등학생 기능경진대회에 출전하기도 하고 학과 연구생이 되어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기술이 제일 쉬웠어요”

운동선수와 학업을 연결시켜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이니까요. 기술과 학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선철곤 대표의 시간은 달랐습니다. 기름때가 묻어 있는 손으로 니체, 토인비, 플라톤 등의 철학서를 넘겨보곤 했으니까요.
공부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었습니다. 첫 직장에 들어간 후에도 창원기능대학 금속과 기능장과정을 마치고 방송통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부경대 금속공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남다른 열정은 곧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첫 직장이 대한중기공업(현대위아의 전신)이었는데요. 제품 불량이 너무 많았어요. 10개를 만들면 8개가 불량일 정도였죠. 가만 보니까 스프링 공정에 문제가 있더라고요. 스프링은 원래 냉간가공을 해야 하는데, 당시 회사에서는 열간가공을 하고 있었어요. 바로 공정 담당자를 찾아갔죠.”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의 건의사항을 생산라인에 적용하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3개월 동안 단 한 건의 불량도 생기지 않은 거죠! 그 길로 품질관리부로 자리를 옮긴 선철곤 대표의 활약은 계속되었습니다.

“회사에서 K-9 자주포를 만들었는데, 포신(포의 몸통 부분)을 검사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국내에 관련 서적이 없다면, 원서는 있겠다 싶어 번역하기 시작했죠.”

전역을 앞두고 틈틈이 익혀두었던 영어실력이 여기서 발휘됐습니다. 3개월 만에 번역을 완성한 것은 물론 ‘비파괴검사기능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으니까요. 품질관리부로 옮긴지 딱 6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백만 볼트 건전지처럼 자꾸만 넘치는 에너지와 아이디어는 얼마 안가 그를 연구소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 “제 꿈은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묵직하게 쌓인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36세에 회사를 차린 선철곤 대표에게 커다란 기회가 찾아옵니다.

    “1995년인가, 대우자동차에서 사람이 찾아왔어요. 승합차에 들어가는 미션 스페이서를 일본에서 공급받고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없다고 했어요. 그날로 당장 관련 원서와 자료를 찾았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한다고 했던 그 기술을 선철곤 대표는 딱 일주일 만에 해내고 말았습니다. 국내 최초로 승합차용 미션 스페이서 국산화에 성공한 것인데요. 이때부터 썬프레인코의 성장속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썬프레인코가 바라보는 시장은 한국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끈질긴 연구로 2004년에 개발한 프로프 로드(접이식 시트에 사용되는 동력 전달 장치)와 가스스프링은 미국 크라이슬러에 수출되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샤프, 도시바, 파나소닉, 히타치 등 까다로운 일본 시장에도 진출하며 인정받았으니까요.

    “기술이 있어야 다음 세대가 살기 편해져요. 크게는 국가경제도 튼튼해지고요. 공부든 기술이든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들은 절대로 배신을 안 해요. 절대로요.”

    선철곤 대표는 이제 자신의 분야에서 대한민국 명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기술인이 되어 썬프레인코를 세계 1위의 기업으로 키워나가는 것. 그래서 그의 시계는 지금도 여전히 속도를 올리며 내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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