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청년 시절, 정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목울대까지 치밀어 올랐다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그 뜨거운 마음이 사회적 약자를 향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고도 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다름’이 잘 어우러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던 남자.
경기도 수원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영빈 사회복지사의 이야기입니다.
글 황정은 | 사진 이용기
“건강한 사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날이 참 덥죠?”
호탕한 웃음과 여유로운 손짓으로 취재진을 맞이한 이영빈 사회복지사는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오랜 꿈을 60세를 앞두고 드디어 이뤘다고 말합니다.
30대와 40대, 먹고 살기 위해 했던 다양한 일들이 아주 의미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도 고백합니다.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어요. 그러던 중 몸담고 있던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보자’ 싶었죠. 그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게 사회복지사였어요.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살아있는 동안 절대 이 일을 못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길로 바로 사회복지사 자격증부터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2018년부터 약 1년간 준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경기도와 수원시에서 주최하는 각종 시민교육을 수강하며 본격적으로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용노동부 노사발전재단의 이주연 컨설턴트를 만나며 복지활동 분야에 대한 상담을 받았고,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추천을 받았습니다.
“애초에 노인복지 분야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분야는 조금 생경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누군가는 장애인을 위해 일을 해야겠구나’ 싶더라고요. 성인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제공인력 지원 채용공고를 접하고 입사 원서를 제출해 지금까지 장애인을 도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사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아동이 아닌 성인발달장애인을 돕는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단단히 여미지 않으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입사 당시를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시 면접관이 묻더라고요. ‘이런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요. 질문이 나오는 게 당연했어요. 복지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세상사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말이죠. 다소 냉소적이기도, 혹은 달관한 듯한 대답이었지만 솔직하게 느껴졌는지 면접관들이 모두 웃더군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자신 있었어요. 제가 인생을 살아오며 경험한 모든 것을 살려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면접 후, 약 3개월의 자원봉사 기간을 거쳐 입사 여부를 판단하자는 내부의 결정이 내려졌고, 그는 3개월 동안 봉사자로서 장애인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3개월이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기였어요. 스스로 이 일이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사업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거든요. 저 역시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일원이 됐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요.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충만한 시간이었죠.”
“진짜 사회복지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렇게 3개월의 자원봉사 기간을 거친 후, 이영빈 사회복지사는 2019년 8월 1일부터 현재까지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주간활동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간활동서비스란 말 그대로 낮 시간 동안 성인발달장애인과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간활동서비스는 ‘성인발달장애인이 낮 시간에 지역사회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행된 서비스에요. 지난 2018년 9월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이 발표됨에 따라 2019년 3월부터 본격화됐죠. 취업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직장이 없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건 시간문제죠. 보호자도 쉴 틈이 없고요. 이런 아쉬운 부분을 주간활동서비스가 채우는 거예요. 평생교육, 훈련, 여가, 취미, 대인관계의 형성 및 사회적 기술 등의 제반 서비스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레 합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하지만 이영빈 사회복지사가 처음부터 이 일에 잘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화장실 앞에 선 채로 대변을 보는 한 발달장애인을 접하곤 당황하기도 했죠.
“저도 이곳에 와서 성인발달장애인을 처음 접하거든요. 그래서 종종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꽤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선배 사회복지사들은 상황을 능숙하게 해결하더라고요. 정말 많은 걸 느꼈습니다. ‘사회복지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됐죠. 지금은 저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호흡조절을 몇 번 한 후 뚝딱 일사천리로 신변처리를 하곤 합니다. 많이 성장했어요(웃음). 그쵸?”
-
“남은 인생, 나누며 사는 삶을 꿈꿉니다”
‘어쩜 이리도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까’ 싶게 잘 웃던 그가 불현 듯 자신 또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일을 할수록 ‘아, 이런 게 편견이었구나’ 싶은 부분들이 생겨요. 반성도 많아지고 바람도 많아지는 순간들이죠. 사회복지사로서는 경력이 많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거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거예요. 현장에서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만큼 보람과 의미가 있습니다. 때문에 혹시라도, 이 분야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 계시다면 꼭 도전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는 그는 올해 안에 청소년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은 물론 취약계층의 아이들에게까지 일련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그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진득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
사회복지사는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남성 비율이 적어요. 하지만 이용자들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늘 딜레마에 시달리죠. 그래서 남성 사회복지사는 늘 필요하고 그 역할도 매우 중요하답니다. 이영빈 선생님이 대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사실 나이만 놓고 보자면, 사회복지사 평균 연령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많은 편이신데요. 함께 일하다보니 나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더라고요. 오히려 삶의 연륜이 매우 깊으셔서 저희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복지관에 있는 장애인들도 선생님과 보내는 시간을 무척 즐거워하고요.
실제로 저희가 한 달에 한 번 프로그램 평가회를 시행하는데, 그때마다 많은 장애인들이 이영빈 선생님 반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분이세요.
선생님, 앞으로도 저희와 함께 행복한 시간 만들어가요~
- 전미영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