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의 시간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코리아레바록은 국내 최초로 레버형 도어록을 개발한,
국내 도어록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입니다.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잠금장치를 최초로
개발함으로써 국내 ‘손잡이’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았죠. 올해로 창립 38년을 맞는 코리아레바록의 역사는
이병로 대표의 역사와 일치합니다. 기술인으로서의 자부심, 나아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일군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글 황정은 | 사진 이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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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이요? 호기심 많아 뭐든 분해했죠”
지난 5월 이병로 대표는 ‘이달의 기능 한국인’으로 선정됐습니다. 약 40년 가까이 도어록 분야의 한 우물만 판 우직한 노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죠.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이병로’가 유일하게 말썽을 피우는 순간은 집에 있는 전자제품을 분해할 때였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소위 말하는 ‘분해 기질’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웃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니 내재돼 있던 호기심들이 증폭됐나 봐요. 그 호기심은 주로 기계를 분해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는데요. 기계만 보면, 그렇게 나사 하나까지 다 뜯어보고 싶더라고요.”
어린 시절의 그가 가장 좋아했던 건 집에서 라디오를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가 작동하지 않자 내친김에 라디오를 일일이 분해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분해는 했지만 수습은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죠. 부모님의 퇴근시간이 임박해오자, 마음이 급해진 그는 우여곡절 끝에 라디오를 원상태로 다시 조립해 놓았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듯하게 말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전파 이상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제가 더 고장을 낸 것 같아 어린 마음에 굉장히 겁을 먹었어요. 물론 제가 분해하고 조립해서 좀 더 안 좋아진 부분은 있겠지만요(웃음). 부모님께는 끝까지 비밀로 했습니다.”
“인문계 말고 공고 가서 기술 배울래요”
라디오 속 오밀조밀한 속사정(?)을 맛본 기쁨은 ‘중학생 이병로’의 마음에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때문일까요. 일찌감치 그는 장래희망란에 ‘기술자’ 라고 적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대학도 가고, 공부도 더 하길 원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기술이 배우고 싶더라고요. 제 선택으로 공고에 들어갔어요. 어린 시절인데도 기술이 있어야 내 앞날을 일굴 수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당시 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있는 사람에게는 정년이 없거든요.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일을 할 수 있죠. 때문에 저는 자녀들에게도 꼭 기술을 배우라고 강조해요. 실제로 두 아이들 모두 저희 회사에서 일을 배우고 있고요.”
공고를 졸업하기도 전인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창호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고2때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 군대에 다녀온 시간을 뺀 후 약 8년 동안 그는 총 4곳의 창호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이참에 내 일을 하자 싶어 회사를 인수했죠. 그때부터 레버형 도어록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잘 팔리지가 않더라고요. 시기상조였던 거죠. 그래서 일본 수출로 눈을 돌렸습니다.”
‘국내에서 안 통하면 해외에서 통하게 하면 되지’라는 마음은 적중했습니다.
사업은 날개 돋친 듯 순항 가도를 밟았습니다.
그러던 중 LG화학에서 코리아레바록 제품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일본에 수출하는 제품인 만큼 품질은 보나마나 믿을 만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직접 연락이 온 것인데요.
덕분에 국내 시장으로의 진출도 어렵지 않게 현실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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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에게 정년이란 없습니다”
국내외로 손을 뻗치면서 회사는 성장했고, 그렇게 기업 운영은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곧 위기는 찾아왔죠. 일본 수출을 담당하던 직원이 모든 기술을 가져가 창업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정말 놀랐죠. 일순간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혼자 생각하다가 그 직원에게 일본 관련 일들을 아예 다 넘겨버렸어요. 애매하게 두 회사에서 사업을 하느니,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저희는 당시 거래를 시작한 대기업과의 소통에 더 집중하기로 했고요.”
그야말로 대인배 다운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병로 대표의 이러한 모습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오랫동안 코리아레바록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위기가 발생해도, 그 위기로 인해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일어날 방법을 찾는 모습에서 귀감을 얻기 때문이죠.
“저에게 기술이 없었다면 많은 위기 속에서 쉽게 포기했을 거예요. 하지만 기술이 있으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기술을 믿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요. 앞으로 이런 기술을 가진 젊은 세대가 계속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기술은 나의 경쟁력 뿐 아니라 나라의 경쟁력까지 좌우하니까요.”
해외든 국내든, 어디를 가든 손잡이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는 이병로 대표의 얼굴에서,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손잡이는 나의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 속에선 한평생 기술을 향해 매진한 기능인의 삶이 보였습니다. 손잡이를 돌리면 문으로 가로 막혔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이, 그의 인생도 늘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