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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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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시간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대모엔지니어링의 이원해 대표는 올해로 40년째 ‘기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계 58개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의 수장이지만, 그는 기어이 ‘기업인’이 아닌 ‘기술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합니다. 운명처럼 들어선 기술인의 삶이 이제는 숙명이 되었다는 이원해 대표.  그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심장이 뜨거워집니다.

글 박향아 | 사진 이도영  

  • 기술인으로 이끌어준 가난, 이제는 고맙죠


    ‘뚝딱뚝딱’ 마당에 뒹구는 사과 궤짝을 두드리는 어린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물었습니다.
      “밖에서 뭐 하는 게냐?” / “구두통 만들려고요.” / “우리 집에 구두 신는 사람도 없는데 그건 만들어서 뭘 하려고”  / “이거 메고 도청 앞에 가서 구두 닦을 거예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린 소년은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던 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걸 보며 직감적으로  알았답니다. ‘아, 나도 중학교는 못 가겠구나.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그렇다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린 마음에 생각한 돈벌이가 ‘구두닦이’였답니다. 도청 앞에는  흰 셔츠에 구두 신은 어른들이 많으니, 그곳에서 장사하면 되겠다는 나름의 전략도 세웠죠.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아버지는 서랍 깊은 곳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셨답니다. 땅문서였는데요.  친척 어르신께 집문서를 맡기고 빌린 돈으로, 어린 소년은 구두통 대신 책가방을 메고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한 누이에 대한 미안함, 땅문서를 내주시곤 뒤돌아 한숨을 쉬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열심히 공부해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던 덕에 선생님은 서울에 있는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을 권했지만,  어린 이원해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유한공고에 진학했다는 그는 기술인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 떠밀려 걷게 된 기술인의 삶이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이것이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는  이원해 대표. 그래서 그는 ‘가난’이 참 고맙다고 말합니다.  



  • "대모엔지니어링의 이원해 대표는 올해로 40년째 ‘기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계 58개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의 수장이지만, 그는 기어이 ‘기업인’이 아닌 ‘기술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합니다. 운명처럼 들어선 기술인의 삶이 이제는 숙명이 되었다는 이원해 대표. 그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심장이 뜨거워집니다."

나누는 정신을 잊지 않은 진짜 기술인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유한공고에서의 3년은 이원해 대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기술력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자산’이라는 지혜를 얻은 건데요.  그 지혜는 ‘성실함과 신뢰’라는 더 큰 지혜로 이어졌습니다.

“기술을 익히면서 알게 된 가장 큰 배움은 ‘기술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한 가치관이었어요.  유한공고의 교훈이 참된 인간, 기술 연마, 사회봉사인데요. 앞에 2개는 납득이 가는데  마지막 ‘사회봉사’는 영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내가 학비도 없이 힘들게 배운 기술인데,  웬 봉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랬던 그가, ‘나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가, 지금은 동문 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후배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12년 동안 180여 명의 학생이 해외연수를 통해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었죠. 직원들을 위한 투자에도 아낌이 없습니다.  일찌감치 성과금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과 수익을 나누고, 직원들의 능력개발을 위해 교육과 해외연수  기회도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기업은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것 역시 땅문서를 내주셨던 아버지 덕인 것처럼,  회사의 지금을 만든 것도 함께 고생한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배움이 간절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  이것이 제겐 큰 행복이에요.”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의 임금, 대기업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사내 복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퍼주는 해외연수 기회까지. 비로소 ‘참된 인간, 기술 연마,  사회봉사’라는 3가지 미션을 가슴 깊이 이해한 그는 진짜 기술인의 참모습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기술은 위기를 넘기는 가장 큰 무기 


1989년 설립한 대모엔지니어링은 국내 최초로 전문 어태치먼트(Attachment, 굴착기 탈부착 장비)  사업을 시작한 기업입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굴착기 부착물을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했는데요.  그의 기술력이 깃든 국산제품은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에 역수출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서른셋이 되던 해 회사를 설립하고,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건설전시회에 찾아갔어요.  어태치먼트 기술은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럽 시장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반 관람객으로 참가한 전시회였지만, 이원해 대표는 빈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한국판 팸플릿에 영문 스티커를 붙여 다른 기업의 부스에 몰래 꽂아둔 것인데요.  이제 막 출발한 작은 회사를 조금이라도 세계에 알리고 싶던 열망은 3년 후, 놀라운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미팅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호주의 한 기업에서 그날 몰래 꽂아두었던 팸플릿을 보게 됐어요.  단 한 명이라도 이 팸플릿을 보고 우리 회사를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게  현실이 된 것이죠.”

그렇게 호주에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대모엔지니어링의 기술력은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나갔습니다.  중국, 벨기에, 미국, 인도 등에 해외법인도 설립했죠.  특히 인도에서의 대모엔지니어링 인기는 대단합니다.  어태치먼트 시장점유율 1위를 수년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작은 회사가 세계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비결은 ‘기술력’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이 있다면, 잠시 주춤할 수는 있어도 절대 멈추지는 않는 법이거든요.”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미래가 숨겨져 있다고 말하는 이원해 대표.  기름때 묻은 기술인이 마땅히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오늘도 뜨거운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그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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