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세상
사실 공연 예술 프로그램의 수도권 집중현상은 어제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자체에서는 대응방안으로 문화시설을 건립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콘텐츠가 부족해 실질적인 활용률은 현저히 낮다고 합니다.
이는 다시 지역민들의 문화 소외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악순환이 반복되죠.
이처럼 암울한 현실에 ‘우리만의 공연 문화를 만들자’며 혜성처럼 등장한 ㈜희망정거장.
실력 있는 지역 뮤지션을 발굴, 적극 지원하며 지역 공연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글 최소희 | 사진 이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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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공연문화에 불어온 새로운 활기
㈜희망정거장은 지역 방송·공연분야의 활성화를 목표로 설립된 사회적 기업니다. 2018년 대구 뮤지션의 성지로 여겨지는 공연장 < 락왕 >을 인수하여 업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죠. 이후 이곳을 거점삼아 지역 뮤지션들에게 다양한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수준 높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지역 공연계의 활성화는 물론, 독자적인 공연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방송·공연분야의 종사자들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지역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하죠. 대부분의 공연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희망정거장은 이러한 현실에 맞서 업계 종사자들이 지역 안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뮤지션들에게는 공연의 기회를, 시민들에게는 수준 높은 문화공연을 제공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거죠.”
뿐만 아니라 ㈜희망정거장은 청소년 진로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먼저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영상, 음향 등의 전문장비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적성을 확인하게 합니다. 이어 해당 분야로의 진로를 확정한 친구들에게 실무 전문가와 함께하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류 대표의 이력 중 눈에 띄는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20여 년 동안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온 부분인데요. 그녀가 방송계 쪽으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언뜻 거리가 있어 보이는 두 분야 사이의 어떤 연결고리가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오랜 시간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연예인이나 유투브 크리에이터 등 과반수 이상이 방송계 진출을 원해요. 실제로 그런 직종들이 미래에 유망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서울이 아닌 지역에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잖아요. 지역 안의 수요가 이렇게나 많은데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서울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좀 불합리하게 느껴졌어요.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가 준비합니다.
점차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희망정거장은 지난해 ‘음악공장’이라는 자체 공연 브랜드도 런칭했습니다. ‘호우밴드’, ‘돈데크만’, ‘모노플로’, ‘매드킨’, ‘밴드 라디오’ 등 내로라하는 밴드들의 공연과 < 락왕 >의 최신식 시설, ㈜희망정거장의 영상제작 기술이 만나 수준 높은 영상이 탄생했고 이는 대구 MBC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는 쾌거까지 거두게 됩니다.
“원래 있던 음악 프로그램도 없어지는 마당에 지역 뮤지션이 출연한 영상이 공중파에 편성된 것은 정말 엄청난 성과이지요. 당시 MBC 담당자가 제게 ‘17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숙원사업을 희망정거장이 해냈다’라고 한 말이 가슴에 남아요.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이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에요. 이후로도 힘들 때마다 그 한마디가 제게 힘과 위로를 주고 있답니다”
공중파 출연이라는 성과에 힘입어 윤도현, 이승환 등의 유명 가수들의 대관 예약까지 이어지며 승승장구하던 도중, 코로나19가 찾아왔습니다. 밀집이 제한되는 정책으로 업계 특성상 큰 위기가 될 수 있었으나, 온라인 공연을 활성화하면서 ㈜희망정거장의 활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장비들을 활용해 비대면 공연인 ‘희망콘서트’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국내 최초로 무관중 공연을 시도해 예상을 뛰어 넘는 관객의 호응까지 얻으며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류 대표.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에 새로운 공연문화를 만드는 데에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공연하는 재미로 살던 친구들에게 공연을 못하게 하니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하겠어요. 사실 희망콘서트는 이런 뮤지션들의 요청으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실시간 음악공연방송 ‘MUSIC & TIPBOX’를 통해 온라인 공연에서도 입장료를 지불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어요. 수익금은 뮤지션과 나눠 가지게 되는 구조예요. 아직은 이러한 상황을 낯설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앞으로 온라인 공연문화는 계속 확장될 것이기에 언젠가는 정착되어야 할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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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진심이 닿을 때까지
그들의 진심을 몰라주는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는 류 대표. 그 당당함과 솔직함에서 그녀와 희망정거장의 활동이 참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그 어떤 역경도 희망정거장의 행보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희 활동의 취지를 왜곡해서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만날 때면 속이 상하고 그만 접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죠. 하지만 지금 희망정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기에 그럴 수 없어요. 공연 업계 관계자 모두에게 저희의 진심이 닿을 때까지, ㈜희망정거장의 활동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