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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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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직업을 찾아서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경북 영풍군 단산면 옥대리의 강돌순 할머니는 소백산자락인 충북 단양과 경북 영풍지역 사람들에게 ‘소백산 방물장수할머니’로 불린다. 해방 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방물장수 생활이 50년을 넘었다.어쩌면 그가 현역 방물장수로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 <한겨레> 1994년 9월 23일

여자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팔러 다니던 행상 ‘방물장수’는 팔 물건을 보퉁이에 싸서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물건을 팔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소식통이기도 했지요. 그 시절, 여성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방물장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정리 편집부


  • 아름다움을 더하던 방물장수

    “이건 얼마여. 지난 번 것은 가스가 오래 못 가던데….” 일회용 가스라이터와 손톱깎이 등 잡다한 물건을 파는 방물장수 앞에서 흥정을 붙이는 1990년대 한 마을의 풍경입니다. 이때만 해도 방물장수는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갖가지 물건을 가지고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방물장수는 여자들을 위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외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사대부집 여성의 외출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방물장수는 여자들이 쓰는 연지, 분, 머릿기름과 같은 화장품과 거울, 비녀와 같은 장식품, 바느질 도구 등 여러 가지 물건을 팔러 다녔습니다. 주로 노파들이 행상에 나서서 아파(牙婆)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TV에서 방영되는 사극만 봐도 방물장수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흔한 직업이었으니까요.


  • 바삐 움직였던 직업

    사대부집 여성에게 방물장수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통 창구이기도 했습니다. 방물장수는 대갓집 안채까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물건을 팔러 드나들던 방물장수는 단골을 맺고 마나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방물장수는 물건을 팔고, 말동무가 되는 것 이외에 집안의 혼사에 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집마다 드나들며 물건을 파는 게 일이었던 방물장수는, 각 집안의 내력과 형편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안에 혼기에 이른 처녀와 총각이 있는지 알고 있어서 혼인길을 여는 매파로도 활약했죠. 물건 팔랴, 말동무하랴, 중매인으로 나서랴 그 당시 방물장수는 상당히 부지런하게 움직였던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기억 한편으로 사라지다

    방물장수를 모두 반기지는 않았습니다. 수절한 딸자식을 가진 집에서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출입을 꺼렸거든요. 과부가 방물장수의 눈에 띄면 동네방네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수절한 딸자식이 있는 가문에서는 방물장수의 출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혼사가 거론되어 번잡해지는 걸 미연에 방지한 셈이죠.
    보퉁이에 팔 물건을 싸서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던 방물장수. 본업 이외에 심부름꾼, 염탐꾼, 정보수집 꾼으로 활동하며 대가를 받고 생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하며 근대적 미를 전파하고, 근대 소비문화 창출에 기여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주체로 활동했던 여성으로 더욱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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