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을 단절하다
웃는 모습이 넉넉한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표정을 얼굴에 띠우고 손끝으로는 누군가를 위해 세심하게 작업을 합니다.
천 위에 패턴을 배치하여 정확하게 모양대로 자르고 10년을 입어도 망가지지 않을 옷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옷 속부터 작업을 합니다.
10년 동안 꾸준히 의상실을 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옷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의순 씨의 이야기입니다.
[글 노혜진 사진 김정호]
어릴 때부터 시작했던 양장과 양복
한의순 씨는 19세의 끝 무렵, 20세 때 옷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웃집의 언니가 같이 기술을 배우자고 권유하여 서울에 상경하게 되었다고 해요. "일은 적성에 잘 맞았어요. 실력도 있었고 인정도 받으면서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복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예전에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여자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삶을 많이 살았기에 한의순 씨 역시 자신의 재능을 묻어 두고 가사 일에 매진했습니다. "애들도 어느 정도 크고 난 다음에 생각해 보니 제 기술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일을 다시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 후 한의순 씨는 충주시의 여성회관에서 한복과 기계 자수를 배우게 되었는데요, 그게 인연이 되어 8년 동안 강사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8년 자신의 가게를 열게 됩니다. "강사 일을 하다 보니 실제로 옷을 만들어 볼 시간은 적었어요. 제가 손이 느려서 속도를 좀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의상실을 개업하게 됐죠."
꿈 같이 지나간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한의순 씨가 한창 강사로 활동하던 어느 날 한의순 씨의 친구가 장애인기능경기대회 양장 분야에 참가를 하게 됩니다. 대회 뒷정리 등 힘든 일이 많았기에 도와 주러 갔던 한의순 씨에게 친구가 대회 참가를 권유했다고 해요. "2006년에 처음으로 나가서 한 번 떨어지고 2007년에 양장으로 도전해서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어요. 이로 인해서 2011년에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의 양장 부문에서 은메달을 땄어요." 종목을 바꿔서 양복 부문으로 다시 대회 출전에 도전한 한의순 씨는 31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따내게 됩니다. 그리고 2016년 국가대표로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출전을 하게 되죠. "석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합숙을 했어요. 2016년 올림픽은 정말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은데요, 그중 하나가 선수들 간의 화합이 아닐까 싶어요." 당시 경기에 참여했던 선수들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친구처럼 언니 동생처럼 서로를 북돋워주고 같이 연습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해요. "지도위원님 두 분도 정말 꼼꼼하게 잘 도와 주셨어요. 패턴과 사진도 가져다 주시고 어디가 잘못됐는지 꼼꼼하게 체크도 해 주셨고, 생업이 있음에도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진행 상황도 계속 봐 주셨어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의 양복 부문은 주어진 치수와 도면을 이용해서 재단 및 봉제 공정을 거쳐 남성용 재킷을 완성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졌습니다. 이틀에 걸쳐 치러지는 대회에 평가요소는 도면 요소 배치 정확도와 재단 품질 20점, 의상 결합 품질 30점, 솔기 품질 20점 등 총 5개 평가기준 100점 만점 점수를 합산해 높은 점수를 획득한 선수가 우승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킹작업을 하는데 저는 문진을 올리고 초크로 그려서 잘랐는데 다른 나라 선수들 중에는 패턴에 핀을 꽂아서 그대로 자르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렇게 되면 천이 비틀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모양이 나올 수가 없는데, 심사위원들이 제 걸 보더니 67점을 주는 거예요." 최저 점수가 60점임을 감안하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낮은 점수였습니다. 한의순 씨는 대회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기에 하고 싶은 말은 참고 최선을 다해 시간 안에 완성품을 제출하게 됩니다. "항상 소매가 잘 안 돼서 지도위원들께 혼났는데, 소매도 예쁘게 잘 달렸고 옷 만듦새가 만족스럽게 나왔어요. 통역사도 제가 1등일 거라고 자신했는데, 결과는 0.18점 차이로 2등이었어요." 아무래도 마킹에서 점수가 깎인 것 때문에 2등을 한 것 같아 집에 와서 한 달 동안 서운하고 속상했다고 합니다.
힘이 닿는 한 계속 일을 하고 싶어
"미싱으로 할 수 있는 기능대회는 양장, 양복, 한복 세 가지예요. 저는 세 분야 다 나갔거든요. 같은 종목에 출전할 수는 없으니 기능대회는 더 이상 나갈 수 없어요. 좀 아쉽긴 하네요." 한의순 씨는 자신은 이제 출전을 할 수 없지만 다른 누군가가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혹은 이 일을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이 일을 배우고 싶다고 도전하는 분들 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떤 일이든 힘든 고비를 넘겨야 익숙해질 수 있거든요. 꼭 대회를 나가지 않더라도 기술을 배워 두면 자기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요. 사실 장애인들에게는 그게 중요해요. 자기 일을 하며 산다는 거요." 한의순 씨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경우 체형에 딱 맞는 옷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서 입으면 훨씬 맵시 있는 모습으로 다닐 수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는데요, 장애인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10년만 하고 그만두자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는데요,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한의순 씨의 자녀분 중 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딸도 있다고 하는데요, 기성복도 좋지만 자신만의 디자인을 연구하고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해요. "배울지는 모르겠지만 제 기술을 전수하고 싶어요. 한 벌의 옷을 하나하나 다 만들어 보는 건 참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거든요." 한의순 씨는 몸이 불편하다고 주눅 들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일이든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일은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사실 저도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딸려서 돋보기를 쓰면서 일하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하다 보면 어느새 일이 끝나 있더라고요."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손님을 대하며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한의순 씨. 60의 나이에도 가슴에 담은 뜨거운 열정이 사라지지 않는 그녀가 자신의 말처럼 지속적으로 당당히 일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